▲ 어고은 기자

서울지역 집중호우에 따른 침수로 신림동 반지하방 일가족 3명이 숨진 참사에 노동계도 침통해하고 있다. 발달장애를 가진 언니와 노모, 10대 딸을 부양하다 숨진 홍아무개(47)씨가 면세점 협력업체 판매노동자로 일하다가 노조간부로도 성실히 활동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고인의 동료들은 홍씨를 “항상 손을 먼저 잡아 준 친구”로 기억했다. 코로나19로 면세점이 직격탄을 맞은 만큼 고인이 생전 경제적 어려움에 내몰렸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부루벨코리아지부는 10일 오후 홍씨와 가족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모병원에서 고인 사망과 관련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지부는 “노조 전임자로 1천명의 조합원과 면세노동자 전체를 위한 활동에 앞장서 왔던 고인의 비보에 많은 이들이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며 애도를 표했다. 지부에 따르면 고인은 면세점 협력업체인 부루벨코리아에서 판매노동자로 근무하다 4년 전부터 지부 전임자로 활동해 왔다. 부루벨코리아는 외국 유명브랜드 상품을 수입해 국내 면세점에 공급하는 회사로, 지부는 면세점 화장품·의류매장에서 판매업무를 하는 노동자들로 구성돼 있다.

지난 9일 새벽 신림동 한 주택 반지하에서 홍씨와 발달장애인 언니(48), A씨의 딸(13)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지부에 따르면 사고 당일 홍씨가 지인에게 구조 요청을 했고, 지인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경찰만 와 있고 소방당국은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현장에서 양쪽 유리창을 뜯으려고 했고, 한쪽을 뜯어 냈지만 손을 집어넣었을 때 이미 천장까지 물이 찬 상황이었다고 지부는 설명했다. 함께 거주하고 있던 자매의 모친은 사고 발생 당시 병원 진료를 위해 집을 비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과 함께 전임자로 일한 김수현 지부 사무국장은 “본인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며 “힘든 일이 있어도 함께 일하면서 많이 웃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어머니가 나이가 있으셔서 아프신 것에 대해 고민이 있었고, 언니와도 항상 같은 시간에 통화하는 것을 봐 왔다”며 “가족한테 헌신적인 사람이었는데 ‘더 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을 했었다”고 전했다. 고인과 대학생 때부터 20년 넘게 알고 지낸 최자현 삼경무역지부장은 “이사를 못 간 것은 언니의 생활반경이 (해당 지역에) 다 잡혀 있었기 때문”이라며 “가장으로서 본인이 항상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에 표현은 안 해도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 지부장은 “고인이 먼저 노조활동을 했고, 권고사직 등 구조조정 문제로 상담을 하자 노조를 설립할 수 있게 도와 줬다”며 “고인은 싫다고 하거나 거절을 안하는 사람이었다. 어려울 때나 부탁하면 항상 손을 잡아 주는 친구였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이후 면세점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린 것에 대한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소연 노조 위원장은 “2019년까지 호황이었던 면세산업 종사자들이 직장을 잃고 무급휴직을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며 “특히 협력업체 직원들은 이러한 상황을 더 혹독하게 견뎌야 했다. 면세업계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상황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부는 “고인은 저임금에 시달리는 서비스 노동자로서 어려운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지하에 살았다”며 “코로나19로 인한 면세점 노동자들의 소득 저하는 반지하가 아닌 다른 주거형태를 선택하기 어렵게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홍씨가 가족부양을 도맡았던 만큼 돌봄시스템 공백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지부는 “고인은 고령의 어머니와 발달장애인 언니, 어린 딸까지 홀로 부양해야 했다”며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과 노인을 부양하는 가족들에 대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더 이상의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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