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관악사 앞에서 청소노동자 A씨가 청소 중이다. <정소희 기자>
▲ 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관악사 앞에서 청소노동자 A씨가 청소 중이다. <정소희 기자>

지난해 6월에 직장내 괴롭힘과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던 한 청소노동자가 숨졌다. 그보다 앞선 2019년 8월에도 창문과 에어컨 하나 없는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가 사망했다. 대한민국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에서 일어난 일이다.

두 노동자의 죽음으로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조건과 휴게실 실태가 알려졌다. 지난해 숨진 서울대 청소노동자는 하루에 100리터 쓰레기 봉투 18개를 혼자 처리해야 했다. 2019년 당시 서울대 청소노동자 휴게실 중 냉·난방 장치가 없는 곳은 22%에 달했다. 서울대 청소노동자들은 “두 명이 죽어도 서울대는 바뀌지 않았다”고 말한다.

<매일노동뉴스>가 2019년 숨진 청소노동자 3주기를 맞아 9일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정규직 전환에도 일부는 비정규직
“매년 8월이면 마음이 불안해”

서울대 기숙사(관악학생생활관) 중 한 곳인 글로벌학생생활관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A씨는 “8월만 되면 마음이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용역회사 소속인 그는 매년 8월마다 근로계약서를 다시 쓴다. “재계약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회사가 ‘다른 사람을 쓰겠다’고 하면 바로 실업자가 되니까요.” 그는 “고용불안이 항상 있다 보니 불편한 점이 있어도 (회사나 학교에) 말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글로벌생활관에는 관리자 1명을 포함해 총 11명의 미화·시설·경비 노동자가 일한다. 주 5일을 꼬박 지키는 법인 직원과 달리 주 6일을 일하고 사소한 복지에서도 제외된다. “아이스 목도리도 여기서 일하는 사람은 안 주더라니까요. (용역업체에 소속되지 않은) 다른 직원들은 질 좋은 작업복을 입는데 우리는 질 나쁜 작업복을, 그것도 올해 처음 받았어요.” A씨는 “단 하나 바라는 것은 무기계약직 전환”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서울대 청소노동자들은 2018년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학교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들과 학내 기관에 고용된 노동자들로 나뉜다. 이들은 모두 서울대 법인직원과 구분된다는 점에서 ‘자체직원’이라고 불린다.

글로벌생활관을 비롯한 서울대 관악학생생활관은 학내 기관 중 하나다. 기관장은 총장이 아닌 교수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는 법인직원도, 기관장이 고용한 자체직원도 아닌 용역회사 소속이다. 글로벌생활관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마무리된 이후인 2019년 9월에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재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전 학생대표는 “기숙사다 보니 기본적으로 청소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상당히 높은데 다른 생활관과 달리 용역업체 소속이라는 점에서 노동강도 완화가 어렵고 고용이 불안한 문제가 있다”며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사람 죽어도 바뀌는 것 없어”

기숙사 청소노동자 B(65)씨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건물인 학생생활관 931~935동을 혼자 청소한다. 학교는 노동강도가 높다며 여성노동자 대신 남성노동자를 홀로 보냈다. B씨가 청소하는 곳의 총 면적은 4천300여평에 달한다. 건물 계단을 수시로 오르내리며 청소한다. 기숙사 청소 특성상 야외 청소 비중이 높은데 폭염 시기에는 뜨거운 햇빛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라고 한다. B씨가 “사람이 1명 더 채용됐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는 이유다.

지난해 6월 서울대 기숙사 휴게실에서 숨진 50대 청소노동자 이아무개씨는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기숙사 한 동을 혼자 청소해 육체적 강도가 높은 노동을 지속한 점이 판정의 근거가 됐다.

이씨가 과로사하면서 서울대는 주말 청소업무를 외주화하는 조치를 내렸다. 청소노동자들은 주말 근무는 없어졌지만 매달 30여만원의 임금이 줄었다고 호소한다.

B씨는 “918동과 924동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2명은 아파트 기숙사를 혼자 맡아 일한다”며 “본부 직원은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오후 3시30분에 퇴근하는데 이들은 새벽 5시에 출근해 오후 5시까지 일한다”고 증언했다. B씨는 “어떻게 이곳을 혼자 청소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의문”이라며 “사람이 죽어도 서울대는 바뀌는 게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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