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의 정년. 공로패며 묵직한 금붙이, 또 동료·가족의 박수와 꽃다발 따위를 떠올린다. 이제는 좀 쉬라는 자식들 잔소리는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니 한 귀로 흘린다. 단기 계약직 일자리 소식에 나를 받아 주는 곳이 아직은 있구나 싶어 들뜬다. 종종 어깨 아파 팔 올리기가 쉽지 않았고, 시큰거리는 무릎 탓에 아이고 소리를 달고 살지만, 아직 어디 크게 망가지지는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긴다. 일 안 하면 좀이 쑤신다고도 너스레 떤다. 일하지 않는 날을 상상할 수 없다. 평생을 그래 왔으니 특별할 것도 없다. 많이들 그렇다. 길 위에서 정년을 맞을 줄을 그는 몰랐다. 손가락뼈가 휘도록 열심히 했고, 잘못한 게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시작한 싸움이 680여일째다.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 김하경씨는 정년을 맞은 3월31일, 청와대 들머리 길바닥에 앉아 있다. 조끼와 팻말과 현수막이 다 익숙한 것인데, 실은 남 일에 힘 보태느라 그렇다. 하루 좀 쉴 법도 한데, 그러질 못한다. 지난밤 농성 천막 앞 문화재 자리엔 공로패도, 번쩍거리는 금붙이도 없었지만 동지라 부르는 사람들의 응원이 많았다. ‘다시 날자’고 거기 현수막에 새겼다. 항공권 예약이 급증했다니, 비행기만 다시 난다. 부당해고 판정에도 김하경씨가, 앞서 정년을 맞은 기노진씨가, 곧 정년이 돌아올 김계월씨가 돌아갈 곳이라곤 노동청 앞 낡은 농성 천막이다. 회사는 애써 큰돈을 들여 버틴다. 특별할 것도 없다. 많이들 그렇다. 그게 서러움 복받치는 일이라고 길 위의 해고자들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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