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았다. 취임 뒤 첫 공식 방문지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이후 공공기관 비정규직은 3단계로 나뉘어 정규직화가 이뤄졌다. 대부분 공기업은 자회사를 만들어 직접고용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이제 대통령은 5년 임기 막바지를 지나고 있다. 정규직 전환 노동자들은 눈물을 그쳤을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자회사로 직접고용된 노동자들은 새 정부 출범 직후 파업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파국에 이른 이유는 무엇일까.<편집자>

이은영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장
이은영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장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취임하자마자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며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하면서 우리는 희망을 가졌다. ‘비정규직 제로시대’는 대통령의 약속이니 이제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비정규 노동자들도 고용불안 없는, 더 나은 노동조건에서 일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하청업체 소속 간접고용 노동자로 매일 일하는 동안 우리는 대부분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당연한 노동환경이라 여겼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연차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해 아픈 아이를 사무실 바닥에 눕혀 놓고 전화받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아파도 ‘출근해서 아픈 것을 확인받고 가라’는 관리자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출근하기도 했다. 우리가 공단 소속이 아니라 하청업체 소속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대통령의 약속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기다렸다. 공단과 하청업체 관리자 모두 우리에게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말했다.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도록 우리 상담사들은 계속 기다리기만 했다. 열악한 노동 현실이 조만간 바뀔 거라는 희망고문도 계속됐다. 그러는 사이 정규직 전환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하청노동자로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삼삼오오 모이다 우리는 드디어 2019년 12월 노조를 설립했다. 1천여명의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투쟁을 시작했다. 우리는 노조 결성 직후 문제 해결을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헌법이 보장한 쟁의권으로 파업해 상담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일주일, 아니 한 달 뒤에 공단에 직접고용될 줄 알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정부의 1호 정책과제였기에, 공단이 정규직 전환에 나설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벽은 너무 높고 단단했다. 공단은 ‘공정성’을 말하며 공단 직원이 되려면 시험을 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공정’하다고.

고객센터 상담을 하려면 최소 한 달 이상 교육을 받는다. 우리는 교육을 받으면서 매일 시험을 봤고, 하루 교육을 매일 점수로 평가받았다. 이를 통해 입사하면, 하청업체가 또다시 매달 시험을 실시했다. 공단은 분기에 한 번 시험을 실시했다. 우리가 ‘공단시험’이라고 불렀던 이 시험을 위해 하청업체는 시험이 있는 달에 최소 세 번 이상, 만약 한두 문제라도 틀리면 만점을 받을 때까지 매일매일 재시험을 실시했다. 그렇게 15년 이상 근무한 상담사들이 여전히 근무하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공정성’이라며 정부와 공단은 또다시 시험을 요구했다. 공단에서 일하기 위해 대체 얼마나 더 많은 시험을 봐야 하는 걸까? 얼마나 더 시험을 치러야 저들이 말하는 공정일까? 국민건강보험 상담사의 평균 근속연수는 5년이다.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의 업무 경력과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공정성 훼손이 아닌지 되묻고 싶다.

세 차례, 73일간 우리들의 파업 투쟁 끝에 공단은 지난해 10월 고객센터를 ‘소속기관’으로 전환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전환 논의를 위한 노·사·전문가 협의체가 열리지 않았다. 우리가 잠시 희망을 가졌던 문재인 정부도 ‘자회사도 정규직’이라는 거짓말로 갈지자를 걷더니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손을 놓아 버렸다.

고객센터의 소속기관 전환은 아직 험난하다. 전문가위원 선정으로 여전히 공단과 공방 중이다. 거기다 공단이 하청업체를 또 신규 입찰해 상담 노동자들의 고용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소속기관으로 결정된 지금도 이러한데, 전환된들 우리의 노동과 삶이 나아질까? 더 이상 희망고문에 속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5년은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잔혹했다. 희망고문과 공정성을 가장한 노동 착취로 불평등이 더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5년도 공정을 가장한 노동 유연화로 불평등을 키울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까지 그랬듯,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단결해 투쟁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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