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사진 가운데)이 10일 오후 대전지법 서산지원에서 열린 원·하청 책임자에 대한 1심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 고 김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사진 가운데)이 10일 오후 대전지법 서산지원에서 열린 원·하청 책임자에 대한 1심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한국서부발전 대표는 구체적인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

실형은 아무도 없었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낙탄을 제거하던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고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사고와 관련해 당시 ‘원청’ 한국서부발전의 경영책임자인 김병숙 전 대표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나머지 원·하청 관계자들 대부분은 징역형의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김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선고 직후 재판장을 향해 “사람이 죽었는데 왜 책임이 없느냐”며 분노를 터뜨렸다. 평택항에서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고 이선호씨 사고와 관련해 원청 책임자가 지난달 13일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데 이어 또다시 원청에 면죄부를 줬다고 노동계는 비판했다.

안전의무 위반 인정, 판결은 ‘모순’
하청 한국발전기술 전 대표 집행유예

대전지법 서산지원 형사2단독 박상권 판사는 10일 오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의 전 대표 등 14명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을 열고 이같이 선고했다. 하청인 백남호 전 한국발전기술 대표에게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사회봉사 160시간도 함께 명령했다. 김용균씨가 숨진 지 3년2개월 만이다.

한국서부발전 법인은 벌금 1천만원을, 한국발전기술 법인은 벌금 1천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박상권 판사는 서부발전 관계자 7명에 대해선 금고 6월~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한국발전기술 관계자 5명에게는 벌금 700만원~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을 의식한 듯 이례적으로 판결문 일부를 낭독했다. 약 1시간 정도 진행된 선고에서 박 판사는 원·하청 임직원들의 안전조치의무 위반 여부를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김병숙 전 대표에 대해선 “작업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박 판사는 “김 전 대표는 취임 이후 여러 차례 위험성을 보고받고 현장을 방문했지만, 점검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김 전 대표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한 경험이 없다는 사정도 고려했다.

반면 백남호 전 한국발전기술 대표에 대해선 구체적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박 판사는 “백 전 대표는 방호조치 미비와 운전원의 단독근무 사실을 충분히 알았다고 판단된다”며 “그럼에도 설비를 개선하고 인력을 보충하지 않은 것은 주의의무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발전소의 사고를 여러 차례 경험했는데도 제대로 관리·감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임직원들 역시 위반 정도가 가볍지 않다고 봤다. 박 판사는 “태안발전소는 과거 여러 차례 협착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이 사고를 막지 못했다”며 “개인의 안전조치의무 위반이 모여 사고가 발생했다”고 꼬집었다. 특히 서부발전 혐의에 대해선 “자신들이 고용한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안전보호조치를 하지 않고 심지어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다고 볼 사정도 발견된다”고 질타했다. 구체적으로 △방호조치 미이행 △2인1조 작업 미이행 △노동부의 작업중지 명령 위반 등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봤다.

▲ 고 김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10일 오후 3시 대전지법 서산지원에서 열린 원·하청 책임자에 대한 1심 선고를 방청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가고 있다. <홍준표 기자>
▲ 고 김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10일 오후 3시 대전지법 서산지원에서 열린 원·하청 책임자에 대한 1심 선고를 방청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가고 있다. <홍준표 기자>

김미숙 이사장 재판장에게 항의
“원청불패 또다시 확인, 형량 너무 미미해”

양형은 가벼웠다. 모두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에 그쳤다. 박 판사는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참작했다. 선고가 끝나자 고인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재판장을 향해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것”이라며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정의가 살 수 있게 제발, 재판을 해 달라”고 울먹였다. 그는 한참 동안 법정에서 머물렀다. 선고 후 기자회견에서도 “이렇게 엉망으로 재판하려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며 “국민 목숨을 살리는 길을 열어야 할 법관이 국민을 죽이겠다고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족을 지원한 박다혜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원청불패가 또다시 확인됐다”며 “산업안전보건법상 책임이 없다고 해서 서부발전 대표의 무죄가 나온 것이고, 일부 유죄도 너무 형량이 미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항소심을 통해 판결이 시정되고 실체적 진실을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결심공판에서 김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에게 징역 2년, 백 전 한국발전기술 대표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원·하청 기업 법인 2곳에 대해선 벌금 2천만원을 각각 구형했다.

김용균씨는 하청인 한국발전기술에 입사한 지 3개월 만인 2018년 12월10일 태안화력발전소 내 석탄운송 컨베이어벨트에서 점검구 안으로 몸을 숙여 낙탄을 제거하던 중 벨트에 끼여 참혹한 모습으로 숨졌다. 사망사고 시간에 대해 이날 재판부는 애초 알려진 11일 새벽 3시께가 아닌 10일 오후 10시41분~11시께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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