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성화고노조

교육부가 올해 4분기에 2022 개정 국가교육과정을 고시한다. 새 교육과정은 사상 처음으로 노동교육을 공교육에 포함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일과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교육목표에 포함한 총론 시안을 발표했다. 이르면 이달 내 교육목표를 포함한 총론을 명문화하는 연구용역을 발주한다. 플랫폼노동 같은 다양한 형태의 노동이 등장하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갈 학생에게 노동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반영된 결과다. 도입이 유력한 공교육 노동교육의 현황과 쟁점, 한계를 미리 짚어봤다.<편집자>

현행 노동교육, 1만시간 중 3.5시간?
교육목표 배제돼 양 적고 수준 아쉬워

현재 일선학교에 적용하는 2015 국가교육과정은 그해 고시돼 2018년 적용됐다. 총 교육시간은 초등학교가 연간 5천892시간, 중학교가 3천366시간, 고등학교가 3천468시간이다. 이 가운데 노동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다. 가장 최근 조사인 2019년 전국사회교사모임의 분석에 따르면 노동교육은 전체 교육시간의 0.03%인 3시간30분이다. 고2부터는 사회과목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 제외하고 초1부터 고1까지의 사회·경제 관련 교과서 25종을 분석한 내용이다.

실제 이뤄지는 교육시간은 이보다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사회교사모임의 분석은 현행 교육과정 가운데 교사가 수업에서 학생에게 가르쳐야 하는 내용으로 정한 ‘성취기준’을 토대로 교과서 단원을 분석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교과서 외에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각종 외부강연 방식으로 가르치는 교육까지 포함하면 이보다는 많을 수 있다.

실제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의 노동인권교육을 위해 노동인권교육 활성화 기본계획을 매년 수립해 추진한다. 중학교와 일반고를 대상으로 하는 노동인권교실과 노동인권 체험교육 프로그램, 특성화고 노동인권교육 등을 실시한다. 1~2시간 내외의 외부강연이 주류라 일회성에 머문다는 한계는 있지만 공교육에 포함되지 않은 노동교육 활성화를 위한 나름의 대안이다. 또 교사연구회처럼 노동교육에 관심 있는 교사를 중심으로 교안 개발이나 실제 교육 접목 같은 현장의 관심도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교사가 가르쳐야 할 목표에 포함되지 않다 보니 한계가 뚜렷하다. 전명훈 서울시교육청 노동인권전문관은 “현행 공교육에서는 국가교육과정 내 인권교육과 민주시민교육에서 노동인권교육을 하도록 하고 있다”며 “고1 통합사회교과나 중학교 사회과목에서 노동인권교육을 성취기준에 반영하고 있지만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절대적인 양의 부족과 발달수준에 맞는 노동인권교육 구성을 못 한다는 비판이 있다”고 설명했다.

새 교육과정 “일과 노동 가치” 강조
불확실한 사회 마주할 학생의 ‘웰빙’

2025년 적용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이런 비판을 일부 수용한 셈이다. 국가교육과정의 꽃이라는 총론에 노동교육이 포함된 의미가 크다. 물론 아직 시안 수준이라 최종 단계까지는 신중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학교부터 노동교육 운동본부’에서 활동하는 장윤호 이천제일고 교사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니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최종 발표시 총론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전교조뿐 아니라 시민사회 영역에서도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의 특징은 그간 교육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따른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을 벗어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할 역량을 학생 스스로 다듬을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현행 교육과정 개정 당시의 개정 방향은 “지식정보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융합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기반 마련”이었던 것에 반해 지금 논의하는 개정 방향은 “미래사회의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는 기본 역량 및 변화 대응력을 키워 주는 교육체제 구현”이다. 초점을 옮긴 것이다. 이렇게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역량을 강조하면서 생태전환교육과 민주시민교육, 그리고 노동교육 같은 관점이 대거 포함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셈이다.

이처럼 교육과정을 지식습득에서 역량 강화로 전환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5년부터 미래사회에 필요한 핵심역량을 다시 세우고 미래교육의 모습을 제시하기 위한 연구를 해 왔다. 이른바 ‘교육 2030 프로젝트’다. 여기서 강조한 게 개인과 공동체의 웰빙이다. 단순히 행복한 삶을 향한 소비적 구호가 아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할 학생들이 건강한 정서와 사회적 관계, 육체적 건강을 갖춰야 하고 이를 위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명제다.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노동교육이 포함된 배경이다.

전 교과에 노동관점 녹이겠다는 교육부
노동계와 교육계 “필수교과 필요하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노동교육은 어떻게 현실화할까. 현재 가장 유력한 방안은 고등학교 사회과목에서 노동 관련 교육 분량이 늘어나고, 다른 과목에서도 노동 관련 지문이나 표현을 늘리는 방안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신설할 일반계고 융합교과에 노동인권 단원을 강화하고, 국어과목 지문에서 노동 관련 소재를 다루는 식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과 경제활동은 교육부 시안에도 포함된 교과다. 노동인권뿐 아니라 합리적 소비와 창업 같은 경제활동 관련 내용을 가르친다. 융합교과라 수능 범위에는 포함되지는 않는다. 이 관계자는 “수능이나 대입과는 관련이 없으나 노동인권 교육을 요구하는 쪽은 실생활 중심의 노동교육을 강조하고 있다”며 “아르바이트 같은 일에 대한 권리와 피해 구제를 위한 법적 장치를 알고 예방하는 내용처럼 생활 중심 노동인권교육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교양교과는 통상 한 학기 64시간 정도를 수업시간으로 구성하는데, 이 가운데 일부 단원이기 때문에 3분의 1 이하 규모인 20시간 내외로 노동인권을 가르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런 방향은 노동교육을 공교육에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해 온 노동계와 교육계의 시각과는 거리감이 있다. 안정섭 국가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노동교육을 필수교과로 하는 것”이라며 “기본소양이자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방향을 추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장윤호 교사는 “가능하면 모든 급에서 독립된 교과로 수업을 하는 게 맞다고 판단한다”며 “처음부터 어렵다면 최소한 고1은 필수로 듣도록 하고 심화과정을 만들어 선택교과로 듣도록 하되 특성화고는 심화과정도 필수화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현재로써는 교육부의 ‘강행’ 가능성이 더 유력한 상황이다. 교육부가 이미 고등학교 교육시간을 줄이기로 한 상황에서 노동교육 외에도 생태전환교육 같은 내용도 포함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학교부터 노동교육 운동본부
▲ 학교부터 노동교육 운동본부

추상적 개념 다루고 실생활 대응 위주?
“사회적 노동 의미 이해하는 시민교육”

또 다른 쟁점은 노동교육의 관점이다. 현재 노동교육은 독립 혹은 필수교과 편성 여부와 별개로 인권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의 한 갈래로 노동권을 가르치고, 실질적인 노동피해를 예방하거나 대응하기 위한 실생활 교육에 가깝다. 한쪽은 지식과 개념을 전달하고 다른 한쪽은 실생활에서 용례를 다루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는 노동교육의 본래 의미를 달성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진숙경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교육을 받고 나서 ‘노동자가 어떤 권리가 있는데 (플랫폼 노동자처럼) 노동자가 아니라서 보호를 못 받으니 안타깝다’는 인식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며 “일과 노동이 갖는 사회적 의미와 그런 환경 속에서 노동자로서 내 현실을 깨닫고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를 위한 노동법 적용 범위나 최저생활을 개선할 필요가 있는 이유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 위상을 갖도록 하는 게 노동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행 노동교육은 한계가 명확하다. 지난해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주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관련 토론회에서 최덕현 교육노동자현장실천 부대표는 시중의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노조혐오 서술이 만연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특성화고 학생 대부분이 수강하는 ‘성공적인 직업생활’ 교과에서 “노동은 자본과 대립해 투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근로를 사용하는 것이 옳다”거나 “노동조합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귀족노조와 이익집단이라는 국민적 평가” 같은 표현이 등장할 정도다.

대입에 종속한 교육, 실효성 있나
입시제도 개편 뒤따라야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 교육의 고질병인 대입 종속성 탓이다. 이런 지적은 노동교육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고교학점제와 현행 대입제도의 충돌에서 발생한다. 2025년 시행하는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고등학교에서도 원하는 수업을 듣고 학점을 취득해 졸업하는 제도다. 고1은 공통교과를 듣고 고2부터 과목을 선택한다. 그러나 현재 대입제도는 학생부를 검토해 학생을 뽑는 학생부종합전형 같은 수시와 수능 점수를 잣대로 하는 정시다. 학생의 진로에 따른 과목 선택과 다양한 관심사를 대입에 반영하는 구조가 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대입과 관련이 없는 노동교육을 선택할 학생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고교학점제하에서 노동교육은 대학에서 학생 선택을 받지 못해 폐강되는 수업 처지가 될 공산이 크다. 이는 노동교육뿐 아니라 생태전환교육처럼 입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대부분 교과가 처한 현실이다.

이 때문에 고교학점제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지난해 7월 교사 2천20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72.3%가 고교학점제를 2025년 전면 도입하는 것에 반대했다고 밝혔다. 대입에 유리한 과목 위주로 선택하거나 이수하기 쉬운 과목에 쏠림이 발생할 것이라는 응답이 각각 91.2%, 92.4%로 나타났다.

결국 대입체제 전반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고교학점제에 발맞춰 학생들이 자유롭게 원하는 과목을 수강할 수 있도록 수능을 자격고사화하는 방안이 가장 중점적으로 거론된다. 실제 문재인 정부 초기 수능을 개편하기로 하면서 자격고사화하는 방안도 유력하게 제기됐으나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 등의 반발로 무산했다. 변별력 위주의 객관식 시험인 수능을 유지하는 한 학생의 성취를 중심으로 다양한 관심을 교육에 반영하려는 고교학점제 같은 제도가 안착할 수 없다는 인식이 크다. 교육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수능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논·서술형 수능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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