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하루 전인 지난 26일. 서비스연맹이 주최한 배달플랫폼 안전배달제 도입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 발표된 배달라이더 노동 실태조사 결과는 배달플랫폼 노동자들의 위험을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3.3%가 지난 1년간 1건 이상의 오토바이 사고의 경험이 있었다. 이렇게 일상적인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유상종합보험에 가입해 있는 노동자는 48.8%로 절반이 안 되고, 유상종합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89.4%가 보험료 부담 때문이라고 답했다. 1년이면 배달플랫폼 노동자 두 명 중 한 명이 사고를 경험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니 민간보험 시장에서 보험료는 높아지게 된다. 그렇게 높아진 보험료 부담으로 노동자들은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게 돼 보호받지 못하는 위험의 악순환 구조에 빠져 있다. 한편 산재보험 가입률은 적용제외 사유를 제한하면서 높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23%의 노동자들은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가입 여부조차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더들의 생명과 안전을 현란한 라이딩 기술과 운에만 맡겨서 될 일은 아니다. 생계를 위해 위험 감수를 강제당하지 않을 수준의 배달 수수료를 통해서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안전배달제 요구는 지극히 당연하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정의의 측면에서나 안전의 측면에서나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배달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은 노동을 매개하는 플랫폼 자체의 알고리즘을 활용하고 개입하는 것을 통해서 진전할 수 있다. 알고리즘 자체에 수요와 공급을 넘어서는 안전의 개념을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배달료 논의만으로 확보하는 안전에는 한계가 있다. 이윤을 위해서 30분 배달제 등 배달시간 상한 관리만 이뤄졌다면, 안전을 위해서 배달시간의 하한 관리와 이에 부응하는 배달료 체계를 반영하는 플랫폼 알고리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은 좋은 계기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는 제3자에게 도급·용역·위탁 등을 행한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서는 건설업 및 조선업의 경우 도급·용역·위탁 등을 받는 자의 안전·보건을 위한 공사·기간 기준을 마련하고 점검하는 것을 구체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 사항으로 적시하고 있다.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하청업체 중대재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방식으로 배달플랫폼 알고리즘이 설계돼 초래된 라이더들의 중대재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기존 산업의 안전·보건 관리에서는 인적자원을 배치하는 체제 및 이에 기반한 체계의 구축·이행 조치가 중요했다. 플랫폼산업에서는 인적 자원을 대체하고 있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대한 개입과 관리가 중요하게 다뤄져야만 한다.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한 ‘체제’는 사업장 안전보건 관리에 관여하는 조직의 구성과 역할을 규정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체계’는 조직 구성과 역할을 넘어서 사업장 안전보건 전반의 운영 또는 경영을 정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더불어 중대재해처벌법이 개인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에게 요구하는 바는 단순히 조직의 구성과 역할 분담을 정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종사자의 안전과 보건이 유지되고 증진될 수 있도록 사업 전반을 운영하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플랫폼기업이 업무 할당과 분배를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에 의존한다고 해도, 노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한 책임은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아닌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있다.

플랫폼기업의 이윤은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노동에 원천을 두고 있다. 소비자가 내놓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와 지리적 위치 정보를 처리하고 예측·배당하는 알고리즘을 통해 극대화된다. 그럼에도 알고리즘의 작동 구조는 철저히 비밀에 가려져 있다. 노동자들은 단지 앱에서 뜨는 콜에 대한 응답 여부로만 알고리즘에 관여한다. 위치정보 데이터와 이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이 기업의 이윤 획득 기반으로서만이 아니라, 안전관리의 기반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사회적 개입이 가능해야 한다. 법리·법조문의 해석은 법학자나 법관에게 크게 의지하고 있겠으나, 다양한 이해집단의 당파성에 기반한 쟁투와 소속집단의 논리를 얼마나 많은 이들을 설득하는지에 따라서도 변화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맞춰 플랫폼 기업의 이윤 추구에서 파생되는 위험에 대해 책임을 묻는 논리와 방책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 의무, 도급·용역·위탁 관계에서의 안전·보건확보 의무에 기반해야 한다.

플랫폼산업 알고리즘에 대한 문제 제기를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서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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