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동관계법령 해석에서 ‘사업’의 개념을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업과 법인 한 곳을 동일시하는 관행을 벗어나 사업을 일종의 기업집단이나 원·하청을 포함한 동태적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의 개념을 확장하면 특수고용직이나 하청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같은 사각지대를 상당수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주장은 한국노동연구원이 20일 발간한 동태적 사업 개념 노동법상 사업 개념의 재검토 보고서에 실렸다. 보고서를 쓴 박제성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업과 법인을 동일시하는 것은 법이론적 근거도 약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현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개인과 개인의 결합, 혹은 개인과 법인의 결합, 혹은 법인과 법인의 결합이 하나의 사업을 구성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다양한 모습을 포괄하는 게 동태적 사업 개념이다.

국내 노동관계법령에서 사업은 다양한 법조문에 등장한다. 우선 근로기준법은 적용 범위를 5명 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11조1항)에 적용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도 노사 간 교섭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29조2의1항).

대법원 “사업은 경영상 일체 이룬 기업조직”

사업에 대한 정의는 불분명하다. 법 조항 어디에서도 사업의 법적 개념을 정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판결(91다21381 등)에서 “사업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영상 일체를 이루는 기업체 그 자체를 의미한다 할 것이고, 따라서 경영상의 일체를 이루면서 유기적으로 운영되는 기업조직은 하나의 사업으로 파악하여야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여지를 두긴 했으나 요약하면 기업조직, 일종의 법인을 사업과 동일하게 본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해석하다 보니 곳곳에서 구멍이 뚫린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가짜 5명 미만 사업장 문제다. 지난해 권리찾기유니온은 가짜 5명 미만 사업장 104곳을 적발해 고발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근기법 적용 범위를 근로자수 요건 없이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입법이 필요하지만, 그 전이라도 해석론을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을 병행하는 게 좋을 것”이라며 “근기법 적용 회피를 위해 사업을 5명 미만으로 쪼개는 경우 법적 형식을 존중해 줄 이유가 없으므로 쪼갠 사업을 모두 묶어 하나의 사업으로 재분류해 근기법을 적용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법인과 기업조직, 사업을 동일한 개념으로 보던 해석을 버리고 공통의 사업목적을 영위하는 법인들을 하나의 사업으로 묶자는 얘기다.

프랑스 경제사회단일체·EU 계약관계망

이런 개념은 외국에서도 확산하고 있다. 프랑스는 1982년 경제사회단일체 개념을 입법으로 도입했다. 서로 다른 법인을 하나로 묶어 근로자대표제도 적용단위를 확립한 제도다. 입법 과정을 보면 가짜 5명 미만 사업장 문제 해법을 유추할 수 있다. 프랑스가 1945년 상시근로자 50명 이상 사업에 근로자대표제도인 사업위원회를 의무설치하도록 하자 프랑스 일부 사용자들이 이를 회피하기 위해 상시근로자수가 그 기준을 넘지 않도록 사업을 쪼갰다. 프랑스 대법원은 1970년대 이런 꼼수를 막기 위해 경제사회단일체 개념을 도입했고 1982년 마침내 입법으로 확립됐다.

유럽연합(EU)도 2002년 계약관계망 개념을 도입했다. 폭스바겐벨기에(VW)가 청소업체인 BMV와 청소용역계약을 체결하고, BMV가 다시 재하청업체 GMC를 통해 청소업무를 수행한 계약을 계약관계망으로 본 사건이 대표적이다. 유럽연합은 VW가 BMV와 계약을 해지하고 신규업체 Temco와 신규 청소용역계약을 체결했더라도 GMC의 고용을 승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VW와 GMC 간 직접적 계약관계가 아니더라도 사업의 동일성을 영위하는 계약관계망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남녀고용평등법에 일부 도입

우리나라도 이런 개념 확대를 일부 적용한 법령이 있다. 대표적인 법령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이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실현을 위해 사업 개념을 동태적으로 평가하는 규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남녀고용평등법 8조3항이다. 해당 조항은 “사업주가 임금차별을 목적으로 설립한 별개의 사업은 동일한 사업으로 본다”고 정하고 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사업주는 하나의 사업을 별개 법인격으로 나눴지만 법의 목적을 위반하거나 회피하려는 의도라면 각각 법인격 전체를 하나의 사업으로 간주해 법을 적용하겠다는 정신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주 안전의무를 강화하면서 사내하청관계를 포함한 사업관계망 전체에 대한 책임을 지운 부분도 해당한다.

노동관계법령에만 사업의 개념을 확장하는 시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경제관계법령쪽에도 있다. 특히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부감사법)에서 정하는 연결재무제표는 지배·종속 관계에 있는 회사와 회사 간 관계에서 지배회사에 연결재무제표 작성을 의무로 하고 있다. 지배회사가 피지배회사에 상품을 밀어내기 하는 방식으로 영업해 재무제표상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조항이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법의 정신은 권한과 책임을 조응시키는 데 있다”며 “사업은 사업주가 선택한 형식으로 정태적으로 고정된 게 아니라 언제나 법의 목적에 비춰 동태적으로 새롭게 정의되는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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