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노조와 사무금융노조 주최로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주 4일 노동과 금융노동자의 미래 토론회. <정기훈 기자>

“주 4일제로 표상되는 노동시간단축을 기그(Gig) 노동자는 공감할까.”(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주 4일제를 해도 비정규직 노동시간단축은 별도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노동 실종 대선’에서 그나마 회자되는 노동담론인 주 4일제 도입을 둘러싸고 전문가 간 논쟁이 벌어졌다. 금융노조와 사무금융노조가 주관하고 민병덕·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주최해 17일 오후 국회에서 ‘주 4일 노동과 금융노동자의 미래’ 토론회가 열렸다. 주 5일제 도입을 선도한 금융노동자들이 주 4일제 도입에도 먼저 깃발을 들겠다며 연 이날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노동시간단축 정책의 실효성을 두고 충돌했다.

우리나라 노동시간은 2020년 기준 1천908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위로는 멕시코(2천124시간)와 코스타리카(1천913시간)뿐이다. 노동시간을 줄여야 할 필요는 시급하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 따르면 2017~2021년 과로사 관련 산재신청건수는 3천43건에 달한다. 승인건수는 1천205건이다. 노동시간단축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일 수 있다는 대목이다.

장시간 노동 줄이고 쉴 권리 확보, 야간노동 규제

김종진 선임연구위원은 발제에서 주 4일제를 도입했을 때 생산성이 오히려 상승한 결과가 있고,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서도 주 4일제와 노동시간단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슬란드의 2014년 주 4일제 시범사업에서 1.3%수준이던 생산성이 3%로 올랐다는 실증적 사례가 있다”며 “일과 삶의 균형을 비롯해 번아웃을 해소하고 노동자의 건강을 보장하며 디지털 전환과 기후위기 대응 같은 다양한 측면에서 주 4일제 도입과 노동시간단축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노동시간단축 정책 방향성도 제시했다. 우선 장시간 및 실시간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을 비롯해 △쉴 권리 △야간노동 규제 △시간주권 확보 △예측 가능한 교대제 등이다.

주 4일제로 대표되는 노동시간단축도 다양한 유형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날 토론회를 주도한 금융노동자들은 영업일은 하루 늘리는 대신 노동일은 하루 줄이는 6일 영업 4일 근무 같은 방식도 제안했다. 황기돈 ㈔나은내일연구원장은 발제에서 금융권 주 4일제 도입 방안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면서 은행은 주 5일 영업하고 노동자는 주 4일 근무하면 20%의 신규고용 창출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종진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간단축을 둘러싼 양극화 우려를 반박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주 4일제로 인한 양극화 논의를 한다면 보편적인 휴일·휴가제도를 도입하고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방식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 4일제 혹은 노동시간단축의 직접 적용이 어렵고, 나아가 노동시간이 줄면 임금이 감소할 수 있는 업종에는 이전소득을 활용한 임금보전 방식 같은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시간 줄이면 소득 감소하는 기그 노동자

정부 추산 비정규직이 800만명을 넘고, 플랫폼을 통한 ‘고용 없는 노동’이 증가하는 추세에서 노동시간단축 논의가 노동시장을 자칫 나눌 수 있다는 우려는 이날도 제기됐다. 박명준 선임연구위원은 “주 4일제를 비롯한 노동시간단축 필요성과 관련 주체들의 추진 의지에 공감한다”면서도 “한국의 분단된 노동시장 상황에서 상층부 금융노동자들의 주 4일제 도입 같은 개혁의 낙수효과가 하층으로 발휘될지 문제”라고 강조했다. 거칠게 요약하면 정규직만 혜택을 보고, 결과적으로 노동시장의 담론을 더욱 분리하는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독립 계약자와 온라인 플랫폼 노동자, 외주업체 노동자, 호출 대기 노동자 같은 근로기준법 밖의 노동자를 아우르는 이른바 ‘기그 노동자’는 노동시간의 영향을 아예 벗어나 있다. 비정규직 800만명이 모두 이런 범주에 포함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는 정확한 수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기그 노동자를 위한 일자리 정보 플랫폼업체는 국내 기그 노동자 숫자를 200만명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하에서 민간부문 비정규직과 비임금 노동자가 증가했는데 고용이 안정되지 않은 이들에게 주 4일제를 강제하면 노동력 투입 기회와 소득확보 기회를 차단하는 식으로 해석돼 당사자 반감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은행권은 이미 코로나19로 인해 단축근로를 하는 상황에서 노동자의 생산성 하락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김형선 금융노조 IBK기업은행지부 위원장은 “코로나19로 점포 영업시간을 단축운용하는 와중에도 은행은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다”며 “그럼에도 국내총생산(GDP)에서 노동자 몫은 지속 감소하고 있는데, 주 4일제를 도입하고 노동시간을 줄여 고용총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노동자의 소득을 보장하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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