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한국노총이 지지후보를 정하는 대선방침을 두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올해 연말까지 선택하겠다던 당초 계획은 틀어졌다. 김동명 위원장(53·사진)은 현장순회 간담회 등을 통해 조합원 의견을 수렴해 중앙집행위원회에 올릴 지도부 안을 만드는 과정을 밟고 있다. 중앙집행위가 논의·합의한 대선방침 안은 대의원대회에서 최종 승인한다. 내년 2월로 예고된 정기대의원대회가 될 것인지, 그 전에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결정할 것인지는 이달 말 결론난다.

한국노총이 조직적으로 대선방침을 정한 경우는 이명박·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선거 두 번뿐이다. 특정 정당·후보 지지를 조직적으로 결론 내리기에는 매우 부담스러운 주제라는 얘기다. 한국노총의 대선방침을 “될 사람 밀어주는 결정”이라고 규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선거결과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세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소극적 결정을 해 왔다는 의미다. 거대 양당 대선후보 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전개되고 있는 이번 대선에서 한국노총의 선택은 무엇일까.

김동명 위원장은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노동의 기준으로 봤을 때 될 사람을 찍겠다”고 말했다. 당선 가능한 후보 중에 노동의 기준으로 봤을 때 돼야 할 사람을 뜻한다. 자신의 판단이 한국노총 대선방침으로 결론 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지후보를 판단할 때 고려하겠다는 요소는 3가지다. 12월 임시국회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등의 노동관계법 처리 과정에서 드러나는 여야 행태, 후보자의 평소 노동관점, 한국노총과의 긴밀한 파트너십이 가능한지다. 김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과 맺고 있는 정책연대는 고려하지 않고 3가지 기준을 잣대로 자유롭게 고민·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인터뷰는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위원장실에서 이뤄졌다.

“입법 행위, 노동 언행, 한국노총과 파트너십
세 가지가 대선방침 판단 기준”

- 대선이 박빙으로 진행되면서 한국노총 선택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연말까지 정하겠다고 했지만 여태 방침을 정하지 않았다. 선거 과정을 지켜보다 될 만한 후보를 선택하려는 것 아니냐 의심하는 시선이 있다.
“될 사람, 안 될 사람이 판단 기준이 아니다. 노동의 기준으로 봤을 때 될 사람을 찍겠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책연대를 해 왔는데 이에 연연하지 않겠다. 자유로운 상태에서 판단할 것이다. 돼야 할 기준은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행동과 실천, 말하자면 한국노총이 연내에 해결해야 한다고 제시했던 입법 과제들에 대해 어느 당이 결과를 내놨는가를 일차적 판단 기준으로 삼겠다. 미래의 약속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평소에 언론 인터뷰와 언행에서 노동의 핵심 가치인 최저임금 인상·노동시간 단축·산업재해 예방 등에 대해 부정적인 언행을 하거나, 이에 대한 미래 약속을 하지 않는 후보는 절대 지지할 수 없다. 기후위기 극복 과정에서 나오는 산업전환 대응, 코로나19 이후 심화하는 사회불평등과 양극화 해소, 노동의 위기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한국노총과 마음 열고 긴밀하게 상의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 정치방침을 결정하는 데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개인적인 주관이나 결정이 아니라 조직의 결정을 중시하겠다는 게 기본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어떤 것을 결단해야 할 때, 말하자면 차기 (임원) 선거라든가 개인의 어떤 입지라든가 이런 것을 계산하지는 않겠다. 노동정책을 차기 정부에서 어떻게 관철하고 견인할 것인지, 그래서 조직노동자뿐만 아니라 미조직 노동자들을 위해서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를 판단기준으로 삼겠다. 그리고 그 결과(대선 결과)에는 무한한 책임을 지겠다.”

“제 판단이 조직적으로 관철되도록 노력”

- 대의원들을 설득하겠다는 얘기인가.
“제 판단이 조직적으로 관철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 입장에 대해서 대의원과 조합원들에게 강력히 호소하겠다. 가령 조직적인 결정을 통해 이뤄진 선택이 다소 부족하거나 조금은 무리한 판단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승리하는 판단으로 만들고 힘을 가지게 하려면 조합원의 절대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호소하겠다. 조합원들과 대의원들이 있기에 조금 두려울지 몰라도 용기 있는 선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대선방침 결정 시기가 너무 늦은 것이냐는 평가도 있는데.
“당초 연내에 결정하기로 했지만 현실화하기 어렵게 됐다. 제 잘못이다. 중집회의를 열어서 후속 방침을 논의하고 결정하겠다. 빨리 결정해야 영향력이 커진다는 말이 있는데, 저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여건을 봤을 때 지금 당장 결정하는 것은 무리다. 영향력의 극대화도 필요하지만 조직의 안정도 도모해야 한다. 조직이 선거로 인해 갈등하고 분열해서는 안 된다. 조직적으로 단합된 모습을 보이면서도 최대한 영향력을 높이는 적절한 시기를 판단하겠다.”

-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도 1년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방침과 대선 결과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선과 한국노총 선거 등을 두고 내부와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대선방침을 한국노총 선거를 염두에 두고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선이 노총 선거에 주는 영향은 분명히 있다. 정치 문제로 지지세력이 바뀔 수도 있고, 더 큰 세력과 함께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세력이 줄어들 수도 있다. 한국노총 조합원의 정서가 한국 사회 여론의 표준이라는 통설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목소리가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대선방침 결정과 연계시키지 않겠다. 한국노총의 대선방침을 세우는 것은 차기 정부에서 한국노총 조직과 노동정책의 발전을 견인하기 위해서다. 현재 여야 선대위에서 활동하는 전·현직 산별대표자들이 많다. 각자 다양한 이유로 선대위 활동을 하기 때문에 존중한다. 하지만 한국노총이 방침을 결정하면 모두가 따라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 대선방침 결정을 앞두고 조직 갈등 문제를 많이 고심하는 것 같다.
“조직적 결정이 내려지면 일부 잡음이 있더라도 전체적으로는 결정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 큰 걱정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감한 정치에 관한 문제이고, 또 대선이 팽팽한 접전으로 치러지고 있고, 각 선대위에 결합하는 산별이 있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내부 분열의 불씨가 아예 잉태하지 않도록 지도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테면 지도부 대선 안을 명확하게 하면 할수록 조직 갈등이 커질 확률이 높다. 두루뭉술하게 내놓으면 조직갈등은 없겠지만 한국노총의 대선 영향력이 선명해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균형감 있는 지점을 찾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또 갈등 요소가 있더라고 내부적으로 설득·해소하는 것이 집행부의 책임이다. 노력하고 있다.”

- 위원장 재선에 도전할 생각이 있나.
“다음 선거까지 염두에 두기에는 제가 너무 할 일이 많다. 선거를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현재 자리에서 내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다음 선거도 기약할 수 있는 일이다. 선거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위원장직을 수행하지 않는다. 지금으로서는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여야에 더 이상 구걸 안 해, 입법 행동 보여야”

- 한국노총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국회 여야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여야가 합의해서 노동 관련 입법을 처리하면 제일 좋겠다. 여당은 야당 반대를 핑계 대지 말고 약속한 대로 주관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합의로 통과시킬 것인지, 독자적으로 할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 야당은 여당의 입법 행위에 대해 반대하고 국회 소집을 거부한다면, 그 모습대로 한국노총은 판단할 것이다. 협조해서 입법으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 야당은 임시국회 소집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이미 양당에 여러 통로를 통해서 한국노총의 입장을 전달했다. 이제는 합의 처리를 하든, 강행 처리를 하든, 무산시키든, 여야가 알아서 할 문제다. 매달리지 않겠다는 말이다. 확고하게 요구했고, 그에 대한 답변·행동을 보고 판단하겠다. 평상시에도 매달렸는데, 선거 국면에서까지 매달리지 않겠다. 노동자도 자존심은 있는 것 아닌가.”

- 이재명·윤석열 두 후보와 만난 것으로 안다. 어떻게 평가하나.
“평가하기는 좀 이르지만, 두 후보 모두 다른 길을 걸어와 다른 것이 많을 것 같지만, 유사점도 보인다. 돌파형 인물인 것 같고, 어떤 결단을 할 수 있는 유형이라고 보였다. 그런데 그 판단과 방향은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세력도 다르지 않나.”

-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한국노총을 찾고 있다. 무슨 말을 전달했고, 앞으로 무슨 말을 건넬 것인가.
“노동의 핵심적인 가치나 노동 그 자체를 깎아내리거나 공격하면 한국노총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과정이다. 평상시 노동자는 정치인에게 배신을 당해 왔다. 지금은 대선국면이다. 게다가 여야가 팽팽하다. 지금은 노동자가 좀 오만해질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꺼이 오만해지려고 한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취약계층 조직·지원이 한국노총 미래 방향
경사노위 운영 방식 개선 필요”

- 한국노총이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상급단체 없는 노조를 가입시키는 방식으로 조직을 확대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제가 내부를 독려하기 위해 질문의 내용처럼 말하기도 했다. 공무원과 교사 조직이 크다 보니 눈에 띄었지만, 미조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조직화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연대노조를 통해 택배노동자 조직화를 하고, 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를 설립하고 지원사업도 하고 있다. 조직화 성과도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등 제도 개선 투쟁도 열심히 하고 있다. 한국노총이 조직적으로 미조직 노동자를 껴안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조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정규직과 새로 생겨나는 플랫폼 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와 함께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실제 성과도 내고 있다.”

-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고용정책부터 집단적 노사관계 문제까지 모든 노동현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가고 있다.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은 노조들은 상실감을 토로한다.
“경사노위 운영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있다. 다만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경사노위는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사회 의제에 대한 사회적 대화 장을 시작할 때 정부 부처 한 곳을 참석시키기 어려워하고 있다. 취약한 독립성 문제도 반복하고 있다. 다만 대표성 문제는 한국노총으로서도 좀 부담이고 고민스럽다. 민주노총이 조직적 결정으로 경사노위에 들어오지 않는 문제는 별개로 치고, 상급단체 없는 노조·노동자들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고심이 된다. 일단은 사회적 대화 기구로서 경사노위가 바로 서고, 그 활동이 존중받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사노위 활성화가 큰 과제다. 높아진 영향력을 바탕으로 사회적 대화를 더 내실화해야 한다. 이후 대표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층채널 형성 방안으로 고민을 이어가면 좋겠다.”

- 최근 경사노위가 공무원노사관계위원회를 발족했다. 공무원위 발족을 성사하기 위해 한국노총이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한국노총이 안정되고 조직된 노동자에게 너무 많은 역량을 쏟아붓는 것 아니냐고 평가한다.
“공무원·교원 노조라는 힘센 노조를 돕는다는 말은 틀렸다. 공무원·교원이 노조를 만들었으면, 노동자로서 권리를 누리게 노조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에서 현안에 접근하고 있다. 지금 노동자인데 노동 기본권을 온전히 못 누리고 있지 않나. 이 기본권을 확보하는 길에 한국노총이 함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나. 잘한 점과 못한 점을 꼽는다면.
“방향성은 잘 잡았는데 집행과정에서 헤맸고 속도 조절에 실패했다. 보수 정부 9년을 거치면서 노동자들의 기대가 높아진 측면도 있었겠지만, 지난 5년 결과는 문재인 정부의 평가로 남는 거 아니겠나. 잘한 것은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등 고용안전망과 일자리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못한 점은 하나만 얘기하겠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정규직 제로선언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현장 비정규 노동자들은 희망고문만 당하다 끝났다고 비판한다. IMF 이후 20년간 급격하게 늘어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과정에서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걸 제로로 만들겠다고 선언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데, 덜컥 선언은 해 놓으니 요구는 빗발치고, 노노갈등까지 더해지는 양상으로 번졌다. 지향점은 좋았으나 현실에 안착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차라리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안정 정책’으로 제시했다면 덜 했을 것이다. 너무 큰 갈등을 남겼고, 앞으로도 불씨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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