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넣은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과태료나 벌금 같은 과징금은 국가에 귀속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에서 피재근로자와 유족에 이익(배상액)이 귀속됩니다. 근로자가 위험을 적극 회피하도록 요구해야 하는 게 법인데 자칫 근로자가 이익의 유혹에 못 이겨 위험을 감수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됩니다.”

지난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어떻게 안착시킬 것인가’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온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노동자가 돈의 유혹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던질 수도 있다는 얘기인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중대재해처벌법 15조(손해배상의 책임)는 ‘사업주, 법인 또는 기관이 중대재해로 손해를 입은 사람에 대해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권 교수의 주장은 배상금을 노리고 노동자가 중대재해를 일으킬 수 있으니 중대재해처벌법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시행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논의가 그야말로 가관이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사라지고 노동자에 대한 무시와 혐오만 떠돈다. 공개적인 토론회에서조차 생명의 가치보다 경영책임자 면책이 더 소중하게 다뤄진다.

가장 신이 난 곳은 대형로펌이다. 그동안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경영자와 현장관리자들을 위해 업무상 재해가 중대한 과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이들이 이제는 ‘중대재해예방(대응)센터’를 만들어 돈을 벌고 있다. 고용노동부 출신 공무원들이 억대의 몸값을 부르며 로펌으로 가면서 ‘노동부 전관 특수’라는 말이 나온다. 산재사망을 막자고 만든 법 덕분에 사람을 죽게 한 범죄자를 위한 면죄 컨설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산재는 노동자의 안전불감증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다. 생명보다 이윤을 중요하게 보고 불법행위를 반복하다가 터지는 기업의 조직적 살인이며, 이를 눈감아 준 정부와 사법부의 무책임 때문이다. 노동자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생명 불감증’부터 바로잡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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