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혜미 법무법인 사람 안전문제연구소 연구위원

2001년 9·11테러로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됐을 당시, 해당 건물에 본사를 두고 있던 모건스탠리사는 전체 직원 중 13명을 제외한 2천687명이 살아남아 화제가 됐다. 이는 모건스탠리의 보안책임자였던 릭 레스콜라(Rick Rescorla)의 재난 대비 훈련 덕분이었다.

모건스탠리의 직원들은 그의 주장에 따라 연 4회 비상사태에 따른 모의 훈련을 8년 넘게 지속해 왔다. 모의 훈련의 내용에는 30여개 층을 걸어 내려가는 대피 훈련뿐만 아니라 상황별 시나리오 훈련과 비상연락 체계 및 비상집합장소 숙지 등이 실제와 같이 이뤄졌다.

모건스탠리의 기적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례에서는 직원들뿐만 아니라 고객 250명도 함께 대피에 성공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에서 평소 선원들에 대한 비상대응 훈련이 거의 실행되지 않았던 점, 이에 사고 초기 갑판으로 승객들을 불러 모아 탈출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점과 대비된다.

모건스탠리 직원 살린 안전 매뉴얼과 훈련

지난 9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에게 위험상황에 대비한 매뉴얼을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중대산업재해에 대한 △작업중지·근로자 대피 등 대응조치 △사상자 등에 대한 구호조치 △추가피해 방지 조치에 대한 매뉴얼을 마련하고, 해당 매뉴얼에 따라 조치하는지를 반기 1회 이상 점검해야 한다(4조8호).

중대시민재해에 대해서는 △사상자 등에 대한 구호조치 △긴급안전점검·위험표지 설치 등 추가 피해방지 조치 △공중교통수단이나 1종 시설물에서의 비상 대피 훈련 등에 대한 업무처리 절차를 마련하고 이행해야 한다(10조7호).

안전 매뉴얼 교육·훈련, 경영자가 지원해야

안전 매뉴얼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체계를 갖추고 문서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건스탠리의 사례처럼 반복된 교육·훈련을 통해 체화해야 한다. 일련의 안전 매뉴얼을 만들고 이를 교육·훈련하는 것은 추가적인 인력과 비용 투입이 필요하다.

실제로 모건스탠리의 임직원들도 직접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모의 훈련에 대해 많이 반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릭 레스콜라는 “연봉보다 중요한 것이 생명이다. 최상의 방법은 반복하는 것뿐”이라며 훈련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모건스탠리는 3천여명에 달하는 임직원과 고객들의 생명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비상계획에 따라 즉시 비상 지휘본부가 가동돼 단 하루 만에 업무를 정상화했다. 경영 손실을 최소화하고 투자자들의 신뢰와 관심을 이끌어 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투자하는 것은 경영자의 선구안과 리더십이 필요한 부분이다. 안전과 재해 예방 분야도 그렇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직접 의무를 부여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등에 대해 경영자의 확고한 리더십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영자·종사자·이용자, 적극 체화하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서 대응조치·구호조치 등에 대한 안전 매뉴얼 일부 마련을 의무화하고, 이 의무 이행의 주체를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으로 둠에 따라 법 시행을 계기로 기업에 안전 매뉴얼의 기본 토대는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마중물로 경영자·종사자·이용자 모두가 안전 매뉴얼에 관심을 가지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극 체화해 중대재해 없는 안전한 사회에 한발 가까워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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