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현장에서 잇따라 발생한 집단 피부질환 사태의 원인이 국내 굴지의 도료업체가 생산한 친환경 페인트(무용제 도료)였던 것으로 최근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무용제 도료의 문제점을 알리고 재발방지책을 찾기 위해 현장 노동자·활동가·전문가의 글을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박정환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노동안전보건실장
▲ 박정환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노동안전보건실장

2019년 9월18일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 이정대 KCC 부사장, 이정기 한국선급회장이 현대중공업 본관에서 ‘친환경 무용제 도료’ 도입을 위한 포괄적인 업무 제휴를 맺었다. 그리고 연말에는 친환경 무용제 도료를 개발에 참여한 인원에게 상을 주는 등 상잔치를 벌였다. 무용제 도료 사용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며, 노동자들에게는 악몽의 시작이 된 것이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지난해 4월부터 신규 물질을 사용해 도장작업을 하면서 총 23명에게 피부에 붉은 반점과 물집이 생기는 피부발진 증상이 발생했다. 몇몇 작업자들이 가려움증을 호소하자 현장 대의원과 노조가 조사한 결과, 무용제 도료 사용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현대중공업은 2019년 12월 개정된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에 따라, 선박 도장시설에 휘발성 유기화합물 저감장치를 설치하는 대신 KCC와 공동으로 휘발성이 없는 친환경 무용제 도료를 개발했다. 하지만 사전 유해·위험성평가를 포함한 어떠한 안전보건 조치도 하지 않은 채 사업주는 일방적으로 작은 T블록 스프레이와 터치업 작업을 시작으로 무용제 도료를 사용했고, 이로 인해 피부 발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용제 도료는 자체 화학반응을 통해 경화시키는 방식으로 ‘친환경’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런데 작업 도중 주제와 경화제가 교반된 상태에서 작업용 용기가 너무 뜨거울 정도로 온도가 올라가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러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이 대기환경에는 친환경일지 몰라도, 이를 사용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지난해 9월 초에 도장부 원·하청 노동자를 조사해 문제의 심각성을 밝혀 내고 무용제 도료 사용 중단과 전문기관에 유해성 검사의뢰, 피부발진 원인조사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피부발진 인원수를 축소하거나 일부 노동자들의 알레르기 현상으로 취급하며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았다. 이에 노조는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 임시건강진단을 요청해 무용제 도료 취급자 333명을 대상으로 병원진단을 실시했다. 그러나 계속 무용제 도료를 사용하면서 직접 취급자가 아닌 주변 작업자도 추가 발진이 확인됐다. 조합원 중 피부 발진으로 인한 가려움증 때문에 숙면을 취하지 못해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에서 치료받는 노동자가 발생하는 등 무용제 도료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지속해서 발생했다.

현대중공업지부는 노동자들의 고충 해결을 위해 노동부 울산지청·KCC·현대중공업과 면담을 수차례 진행했지만 노조의 의견은 수용되지 않았다. 사업주는 무용제 도료 사용 중지는커녕 노동자들이 계속 노출되도록 했고, 예방조치도 없이 형식적으로 원인을 찾으려 했다. 또한 그간 면담내용을 보더라도 정부기관·제조업체·현대중공업은 한목소리로 “(도료가 아닌) 경화제에 포함된 ‘테트라에틸렌펜다민’이란 성분의 함유량이 많아서 피부발진을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조는 다른 피부 자극성 물질에 의해 발진했을 가능성을 열어 뒀다. 결국 노동부 역학조사 결과 정부와 제조업체·현대중공업이 말한 ‘테트라에틸렌펜타민’ 외에도 수많은 신규 과민성 물질들이 피부발진의 원인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아직도 그 외 인체 유해성에 대한 원인은 찾지 않은 채 피부 과민성 물질만을 인체 유해성 물질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노동부의 불성실한 대응으로 사업주는 현장에서 문제가 되는 무용제 도료를 사용하면서, 현재 EH3600 무용제 도료를 개발해 또다시 노동자들에게 테스트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문제를 제기했던 노조의 눈을 피해 보호를 받기 힘든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위주로 무용제 도료 작업을 시키고 있다. 입막음을 하기 위한 회사와 제조사의 한심한 노력이 피해를 더 키우고 있다.

신규 무용제 도료가 현장에 도입된 지 1년 반이 돼 간다. 그간 인체 유해성 검증도 없이 현장에 도입돼 취급 노동자와 주변 노동자까지 집단적으로 피부질환이 발생했다. 하지만 아직도 피부과민성 이외에 어떠한 유해·위험성이 있는지 인체 유해성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의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에게도 건강 장애를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얼마 전에도 노동부 울산지청이 노조에는 사전 통보도 없이 현장에 방문해 무용제 도료 피해 실태를 파악하겠다며 갑작스레 조사를 요구하는 바람에 노조 항의에 부딪혔다. 노동부가 제대로 된 조사를 하고자 한다면 사업주와 노조에게 사전 협조를 구하고 미리 조사 계획을 함께 논의해 계획성 있게 실태를 파악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울산지청은 형식적인 조사를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무용제 도료로 인해 직업병 유소견자 35명, 요관찰자가 88명이 확인됐다. 노동부가 무용제 도료에 따른 피부발진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에 동의하고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이번 화학사고는 중대재해로 판단하고 즉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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