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익찬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필자가 원고를 대리했던 광주근로자건강센터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판결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근로자파견 관계의 핵심은 파견업체 또는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업무수행에 관한 구체적이고 구속력 있는 지시를 누가 하느냐는 것이다. 업무도급 관계라면 업무를 도급받은 수급인이 도급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 지시를 한다. 반면에 근로자파견에서는 노동자를 파견받아서 사용하는 쪽에서 지시를 한다. 그런데 광주근로자건강센터의 경우 안전보건공단이 센터 소속 노동자들에게 그 지시를 했음이 법원에서 인정됐다. 공단이 미리 배포한 가이드를 통해서 처음에 노동자가 방문하면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서 상담을 해야 하고, 어떤 기준으로 분류하고 건강이상을 확인해야 하는지도 그 가이드에 따라야 했다. 그리고 타워크레인 전도, 메탄올 실명, 경비노동자 갑질 같은 현안이 발생하면 고용노동부가 정한 직업병 예방 사업을 전파하고 직접 시행하는 것도 건강센터의 몫이었다. 당초에 의도했던 운영위탁기관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발휘되기 어려웠다.

또 공단은 주기적으로 노동부와 공단, 각 센터 운영기관의 책임자 또는 실무자가 모이는 운영위원회나 TF를 통해 전국 센터의 운영방향을 결정하고 애로사항을 논의했다. 그리고 매주·매월 등 정기적으로 센터 운영 실적을 보고받다가, 2018년부터는 ‘어울림’이라는 통합전산망을 만들어서 전국단위의 운영실적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센터 직원들의 인적사항, 인터넷망에 접속하기 위한 지정맥 정보까지 수집했고 예산사용에 관해서도 원단위로 확인했다. 전국 어디에서라도 건강센터 콜센터 번호로 전화를 걸면 각 지역센터로 자동연결됐다. 국회나 노동부에서 요구하는 자료가 있으면 그 자료를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일할 정도였다. 신규직원이 입사하면 그 교육을 담당한 것도, 직원들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보수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한 것도, 1년에 한 번씩 친목도모를 겸한 워크숍을 주최한 것도 개별 위탁운영기관이 아닌 공단이었다.

안전과 보건 중 ‘보건’에 관해서는 노동부와 공단의 생각에 따라 정책을 집행한 사람들이 바로 센터 직원들이었다. 센터 직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냉대를 받아 가며 일한 사정은 지난 16일자 이 지면의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칼럼에서 나온 내용과 같다. 그러나 위탁운영기관에서는 사업기간이 정해져 있다고 해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상 기간제 근로자 2년 이상 초과 사용 금지 예외조항을 근거로 기간제 근로계약을 고수했다. 불법파견의 주범인 노동부와 공단은 센터 직원들의 고용에 관해서는 자신들이 관여할 바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그 탓에 3년에 한 번씩 위탁계약이 갱신될 때마다 전국의 센터 직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렸다.

공단과 노동부에서 이 사업을 담당하는 사람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봤다면 다른 위탁사업과는 질적으로 다름을 알았을 것이다. 보통의 경우 민간업체가 기존 인력을 활용해 수탁사업을 수행하고 실적급으로 사업비가 지급된다. 반면에 센터는 인건비 지출부터 연필 하나를 사는 것까지도 모두 통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토록 운영에 있어서 지휘와 통제를 할 것이라면 직접고용만이 답이다. 그리고 세부적으로 어떻게 운영할지는 백지에서 밑그림을 그리면 된다. 방법이 없는 문제가 아니라, 찾고자 하지 않아서 문제다. 예를 들어 지역센터 운영과 의사결정에 있어서 민간전문가를 참여시키는 방법도 있다.

이 사건은 추석연휴 직전에 공단이 항소했다. 따라서 판결 확정까지는 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소제기부터 1심 판결까지는 1년 반이 걸렸다.

센터 운영이 시작되고 약 10년 동안 노동부와 공단이 방치한 문제다. 그 기간동안 피해를 본 것은 센터 직원들뿐만은 아니다. 센터의 불안정한 법적 지위로 센터 이용자인 50명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 또한 피해를 입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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