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노조가 구조조정을 반대하며 14일 파업을 예고했다. 서울시와 공사가 적자를 이유로 2천명에 이르는 인력감축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부산·인천·대구·대전·광주 지역의 지하철 노동자들도 투쟁 또는 쟁의행위를 경고하고 있다. 전국의 지하철 노동자들은 왜 싸우려 하는 것일까. 구조조정이 해결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뭘까.


‘코로나 재정 위기’ 노동자에게 덤터기 씌우나
이호영 서울교통공사노조 선전홍보국장

이호영(서울교통공사노조 선전홍보국장)
이호영(서울교통공사노조 선전홍보국장)

“코로나 재정난이 노동자 탓이냐?” 이 한마디가 요즘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의 분노와 항변을 요약한다. 거슬러 가 보자.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하면서 서울지하철은 크게 휘청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공사의 순손실액은 1조1천억원대에 달했다. 승객은 전년 대비 30% 가까이 뚝 떨어졌고, 운수수입 또한 4천500억원이 줄었다. 올해는 부족 자금이 1조6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부터 ‘임금체불’이니 ‘부도 사태’니 흉흉한 소문이 ‘설마’와 ‘혹시’ 사이를 오갔다. 위기를 더 부추긴 건 서울시와 정부다. 시는 운영손실에 대한 국비 보전이 필요하다며 뒷짐 지고, 정부는 지자체가 책임져야 한다며 팔짱만 끼고 있다. 무임수송 비용 국비보전 법안이 발의됐지만, 그마저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가로막혔다. 그렇게 ‘폭탄 돌리기’만 이어지는 가운데 재정위기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10년 만에 귀환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첫날부터 능숙하게’ 총대를 멘다. 아니나 다를까 공사 경영진을 불러 강도 높은 자구책 마련을 지시했다. 행정안전부도 때맞춰 “자구노력 없이는 재정지원이 불가하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공사는 교대근무제 개악, 청년 채용축소, 외주화 확대 등을 통해 1천971명의 인력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안을 전격 발표했다. 코로나19가 애먼 노동자 잡는 ‘구조조정 폭탄’으로 변이되고, 분노에 찬 파업 결의로 이어진 과정이다. 디데이가 다가오지만 노조의 대화 요구에 이렇다 할 반응도 없다. 경영진은 여전히 “구조조정만이 살길”이라고 되뇌고 있다. 이대로라면 선택지는 파업뿐이다.

거듭 촉구한다. 정부는 ‘시민의 발’ 지하철이 직면한 심각한 재정난에 책임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공공교통기관을 부도 상태로 몰아넣고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처사다. 만성적자의 원인이 정부정책에 따른 공익서비스 비용 때문이란 건 정부도 인정하는 사실이지 않은가. 서울시도 재정위기 책임을 노동자에게 덤터기 씌우는 잘못된 정책을 거둬들여야 한다. 인력감축, 안전 외주화 등 비용 절감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다 대형 추돌사고와 구의역 참사를 초래한 것을 벌써 잊었나. 끝으로 단어 하나만 바꾸자. 공사 ‘재정’ 위기라기보다 대중교통에 닥친 ‘공공성’ 위기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교훈 잊었나
박성찬 대구지하철노조 사무처장

박성찬(대구지하철노조 사무처장)
박성찬(대구지하철노조 사무처장)

20년 넘게 시민들의 안전과 서비스를 책임지는 역무원으로서 근무했다. 무임수송비용이란 단어는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피부로 와닿지 않는 생소한 말이었다. 그것은 도시철도를 이용하는 시민의 입장에서도 달나라 언어로 들릴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노조간부를 하면서 시와 공사의 재정을 살펴보고 무임수송비용의 심각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서울과 다르게 대구도시철도를 비롯한 지방광역시는 무임수송 일평균 비율이 30퍼센트에 이른다. 운수수입으로 충당하기에는 한계를 넘어설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적자를 수십년 동안 지방재정으로 메꿔 왔다.

대구도시철도공사도 2019년 기준 600억원, 2025년경에는 1천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무임수송비용에 대한 부담은 초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어면서 눈덩이처럼 쌓여 가고 있다. 결국 적자를 감당하기 위해 지난해에 450억원, 올해는 300억원의 회사채 발행을 대구시에 요청했고, 행안부에서 승인해 재정적자로 남게 됐다.

과거 군사정부와 법률에 의한 정책 결정을 지자체라는 이유만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형평성과 공정성에서도 맞지 않는다.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문재인 정권의 정책 방향과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지난 10년간 대구지하철노조도 무임수송 국비보전을 정부에 요구했다. 그러나 대구라는 보수적인 색채를 지닌 지역의 정치권과 대구시의 소극적 태도는 기재부의 절대 불가란 파도를 넘을 수는 없었다. 코로나19 이후 심각성을 인지한 6개 도시철도 운영기관들과 함께 국회 토론회와 입법절차 진행하고 여당을 찾아다니면서 설득했다. 그러나 지자체와 국회는 정치적 유불리만 따졌다. 보편적 복지는 단지 구호일 뿐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정작 중요하게 쓰여야 할 지방재정이 무임수송비용에 발목 잡혀 시민들에게 돌아갈 복지나 도시철도 시설물 안전에 위협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정부는 인지해야 한다. 정부는 대구지하철 화재참사의 교훈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결단하기 바란다.

파업하고 싶은 노조는 없다. 단지 파업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만 있을 뿐이다.


서울지하철 구조조정, 인천지하철로 향할 것
김현기 인천교통공사노조 부위원장

김현기(인천교통공사노조 부위원장)
김현기(인천교통공사노조 부위원장)

지방지하철의 적자는 매년 심화하고 있다. 원가에 못 미치는 운임, 고령화로 인한 무임수송증가는 말할 것도 없다. 코로나로 인한 방역비용과 감소한 운수수입금으로 올해는 더 어려워졌다.

무임수송 국비 지원 문제는 해묵은 과제다. 그 누구도, 심지어 직접 당사자인 지방정부와 사측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궤도협의회는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오래전부터 강하게 요청해 왔다. 사실 그동안 무임수송으로 인한 재정적자로 노동자가 직접 피해 본 건 없었다. 요금을 올리거나 정부 지원을 받아도 그 재원을 우리 임금이나 복지향상에 쓸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적극 목소리를 냈던 건 서민들의 소중한 발이자 저탄소 녹색교통인 도시철도가 지속가능하고 안전하게 운영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지하철 노동자의 목까지 죄어오기 시작했다.

인천지하철을 운영하는 인천교통공사만 해도 1999년 개통 후 22년이 지나 시설물과 전동차 노후화가 상당히 진행됐고 장애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노후설비를 교체하지 않으면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운영사는 돈이 없다. 그렇다고 사고가 날 때까지 두고 볼 수는 없기에 지난해 279억원, 올해와 내년까지 합하면 900억의 공사채를 발행해 노후 시설물을 개량하고 있다. 이처럼 빚을 내서 급한 불은 끄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결국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이기 때문에 운영사의 부담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결국 서울교통공사처럼 인천교통공사도 노동자의 임금과 처우, 인력을 구조조정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탈철’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외부에서 바라보는 이미지와 다르게 3D 업무가 많은 궤도사업장의 청년직원들이 철도를 탈출해 다른 사업장으로 이직하자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다. 그만큼 열악한 조건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처우는 지금보다 나빠질 수도 없는 벼랑 끝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


정부·지자체의 책임 미루기, 결국은 노동자가 짊어져
남원철 부산지하철노조 교육부장

남원철(부산지하철노조 교육부장)
남원철(부산지하철노조 교육부장)

지난 한 해 부산지하철 무임승차 비율은 31.1%다. 손실 금액만 1천300억원에 이른다. 원가 대비 요금은 27%에 불과한데, 요금은 4년째 동결이다. 원가의 반의반 수준으로 요금을 묶어놓고 3명 중 1명은 공짜로 타는데, 지하철이 망하지 않는 게 기적이다.

정부가 정한 복지 관련 법으로 노인·장애인·국가유공자는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한다. 공익서비스 비용으로 사회가 마땅히 할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전동차를 교체하고, 시설을 보수해야 한다. 지하철 살림살이는 점점 어려워진다. 정부는 지원 방안이 없다고 미루고 지방정부는 재정 여력이 없다며 미룬다. 지하철 운영기관이 선택한 방법은 딱 한 가지. 오래된 전동차와 시설을 그대로 두고, 안전인력을 줄이고 업무는 아웃소싱했다. 생색은 정부와 지방정부의 몫이고, 책임은 오롯이 지하철 노동자가 짊어진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정부와 각 지자체는 서로 지하철을 더 지으려 안달이다. 부산도 사상하단선과 양산선을 건설 중이고, 8개 노선을 계획 중이다. 지하철 운영비는 없다 해도, 지하철 건설에는 돈을 펑펑 쓴다.

구조적이고 필연적인 재정 손실과 이로 인한 구조조정으로 지하철 노사는 매년 단체교섭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올해 쟁의행위는 부산지하철 사측과의 교섭뿐만 아니라, 공익서비스 비용에 대한 정부 지원을 촉구하는 사회공공성 강화 투쟁이었다. 그러나 부산지하철노조는 9월7일 단체협약을 체결해 쟁의행위는 종료됐다. 7월 중순 사장의 갑작스런 사퇴 후 직무대행 체제에서 8월 들어 4건의 안전사고가 연속 발생했다. 지하철 재정을 안정화 시켜 시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입장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공익서비스 비용에 대한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투쟁은 지하철 공공성 강화 투쟁이다. 지하철 노동자가 구조조정의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는 투쟁이다. 동시에 안전한 지하철을 바라는 시민들과 연대하는 매개체로 작동하고 있다. 쟁의행위는 멈췄지만,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의 투쟁에 유무형의 연대를 하고, 지하철 공공성 강화를 위해 다양한 방식의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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