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의 81호 협약은 근로감독(labor inspection)에 관한 협약이다. 국가법령정보센터 사이트(law.go.kr)의 ‘조약’ 방에 들어가 ‘근로감독’을 검색하면 한국이 1992년 12월9일 비준한 ILO 81호 근로감독 협약의 국어본을 볼 수 있다. ‘공업 및 상업부문 근로감독에 관한 협약(ILO협약 제81호)’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발표일은 1993년 12월9일로 한국 정부가 체결한 다자조약 제1203호로 1993년 12월11일 승인했다고 나와 있다.

협약 비준과 관련해 고용노동부 관료들의 주장은 ‘선 입법-후 비준’이다. 입법이 완료돼야 비준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비준한 32개 협약 대부분이 국회를 통한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 결정만으로 비준됐다. 해당 ILO협약과 비교할 때 현행 법령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에서다. 동일한 논리로 근로감독 협약인 81호도 국회를 통한 별다른 입법 절차 없이 국무회의 결정만으로 비준됐다. 하지만 81호 협약과 근로감독에 관련된 국내법을 꼼꼼히 비교해 보면, 과연 국내법이 81호 협약의 취지를 제대로 따르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근로감독관의 직무와 관련된 것이다. 근로감독제도의 기능을 규정한 81호 협약 3조는 “(a)근로시간·임금·안전·건강 및 복지·아동 및 연소자의 고용·그 밖의 관련사항에 관한 규정 등 근로조건 및 작업중인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규정을 근로감독관의 권한 범위 안에서 집행하도록 확보하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근로기준법 101조를 보면 “근로조건의 기준을 확보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그 소속 기관에 근로감독관을 둔다”고만 나와 있다. 81호 협약이 명시한 “작업중인 근로자의 보호”, 즉 안전과 건강에 대한 감독을 제대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

또한 81호 협약 3조는 근로감독제도의 기능으로 “(b)사용자 및 근로자에게 법규정을 준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에 관하여 기술적 정보 및 조언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노사 모두를 대상으로 정보 제공과 협의를 실행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근로기준법 어디에도 노동자는 물론 사용자를 상대로 하는 근로감독관의 정보 및 조언에 관한 조항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81호 협약 3조는 근로감독제도의 기능으로 “(c)현행 법령에서 구체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현행법의) 결함 또는 (현행법의) 남용에 관해 관계당국에 통보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현행법의 부족한 점과 잘못된 점을 파악해 중앙정부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을 근로감독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근로감독 기능에 대한 조항은 우리나라 관련법령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아가 ILO 협약 81호는 12조에서 근로감독관의 권한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 역시 국내법과 큰 차이를 보인다. 협약은 12조1(a)에서 “감독대상인 사업장에 주야 어느 시간이든 예고 없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근로감독관에게 부여하고 있다. 이른바 ‘불시방문’ 권한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는 “근로감독관은 … 현장조사하고(102조1항)”에 그치면서 81호 협약에 규정된 근로감독관 권한의 핵심인 “주야 어느 시간이든 예고 없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권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81호 협약 20조는 중앙정부가 “감독기관의 업무에 관한 연차 종합보고서를 발간하고, 이를 발간 3개월 안에 ILO 사무총장에게 송부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협약 21조에 따르면 보고서에는 “(a)감독기관의 업무와 관련된 법률, (b)근로감독기관의 직원, (c)감독대상 사업장 및 근로자수에 관한 통계, (d)임검(inspection visits)통계, (e)위반 및 처벌에 관한 통계, (f)산업재해통계, (g)직업병통계” 및 “그 밖의 관련 사항”을 수록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고용노동백서’는 들어봤어도 ‘근로감독백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근로감독과 관련해 한국에서 가장 충실한 보고서를 내는 곳은 노동부나 노사단체가 아니라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다.

이렇듯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근로감독제도의 기능과 근로감독관의 권한과 관련해 81호 협약이 강조하는 핵심 사안을 뭉개고 있다. 오히려 법조문(103조)에 “근로감독관의 비밀 엄수 의무”를 둬 근로감독관이 노동기준의 확립과 노동자 안전의 확보라는 본연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 장애물을 조성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의 근로감독관은 81호 협약이 규정하고 있지 않은 과외 업무도 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설립·운영 등과 관련한 업무, 노사협의회의 설치·운영 등과 관련한 업무, 노동 동향의 파악, 노사분규 예방과 그 수습과 지도에 관한 업무” 등이 대표적이다.

‘2020년판 고용노동백서’에 따르면 2019년 현재 우리나라 근로감독관수는 근로기준 2천213명과 산업안전보건 681명 등 모두 2천894명이다. 하지만 백서의 통계는 실태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우리나라 근로감독관은 근로기준과 안전보건에 더해 노동조합 관리 및 노사관계 개입 업무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ILO협약 81호의 조항들에 맞게 충실해진다면, 우리나라 근로감독제도의 효율성과 효과성은 대폭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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