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휴가로 한 주를 쉬었다. 어제 월요일 출근하는데 솔직히 한 주 더 쉬고 싶었다. 일하는 게 사람의 본성이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당신이나 본성에 맞게 죽도록 일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은 날이었다. 매일같이 출근해서 일할 때는 몰랐는데 여름휴가로 일주일을 쉬었다가 다시 일하자니 이렇게 본성 운운하고 있다. 그저 일한다는 것이 이런데, 강제로 일해야 한다면 어떨까. 노예제·농노제 등으로 사람이 강제로 일해야 한다면 어떻겠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단 한 순간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당장 강제노동에서의 해방을 위해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주인의 채찍과 봉건적 관습, 폭력적 권력기구를 비난하면서 노동을 강제하는 체제를 부정해야 한다고 당신은 말할 것이다. 당신의 말이 백번 옳다. 사람에게 강제노동은 옳지 않다. 여기서 경제적 궁핍을 이용한 경제적 강제의 자본제 노동까지 포함해서 거창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계약 자유의 원칙에 따라 노동자가 사용자 자본과 근로계약을 체결해서 하는 것이니 강제노동은 아니라고 당신이 말하더라도 굳이 반박해서 논의하고 싶지 않다. 경제적 강제를 넘어선 세상을 논하기에는 이 세상은 노동에 전혀 우호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늘 이 나라 노동자들이 직면하고 극복해야 할 노동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칼럼에서 지금 말하고자 하는 ‘강제노동 철폐’란 경제적 강제가 아닌 강제노동 철폐에 관해서다.

2. 그런데 이렇게 내가 강제노동 철폐를 말하게 된 것은 사실 어제 오후, 무엇을 쓸 것인지를 찾다가 뉴스를 검색하다 “일본, ILO ‘강제노동 철폐’ 협약 비준에 박차”라는 제목의 매일노동뉴스 기사를 보아서였다.

“지난 6월9일 일본 국회의 참의원 본회의에서 ‘강제노동 철폐에 관한 협약(105호)의 체결을 위한 관계 법률의 정비에 관한 법률안’을 의결했다. 105호 협약이 금지하는 강제노동과 관련해 △국가공무원의 정치 행위 △일정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노동규율 위반 △공무원의 쟁의행위 등에 대한 처벌 수위를 징역형에서 금고형으로 변경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즉 파업이나 정치활동에 참여한 공무원에 대한 법적 처벌을 노역을 해야 하는 ‘징역형’에서 노역을 하지 않는 ‘금고형’으로 바꾼 것인데, 개정 전에는 공무원이 파업을 선동하거나 정치활동에 참여한 경우 최대 3년의 징역형에 처했다. 이에 일본 노동계는 강제노동 철폐 관련 법안 통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법률적 장애물이 제거된 만큼 가을에 열리는 정기국회에서 105호 협약 비준안이 통과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매일노동뉴스 2021년 7월22일자)

여기까지 뉴스를 읽고 나니 이 ‘강제노동 철폐’에 관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105호는 지난 촛불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해서 비준하겠다고 공약했던 바로 그 4개의 핵심협약 중 하나라는 것이 떠올랐다.

3. 비준을 공약했던 ILO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에 관한 87호, ‘단체교섭’에 관한 98호, ‘강제노동’에 관한 29호, 그리고 ‘강제노동 철폐’에 관한 105호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ILO 핵심협약 29호·87호·98호 등 3개를 비준하기로 하고 이들 협약 기준에 안 맞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 국내법 개정에 착수해서 국회에서 지난해 12월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 허용을 포함한 노조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켰다. 올해 2월 ‘강제노동 철폐’에 관한 105호를 제외한 3개의 핵심협약의 비준동의안을 의결했으며, 4월 ILO 핵심협약 비준서 기탁식을 개최해서 그 비준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로써 1991년 대한민국이 ILO에 가입하면서 비준을 약속했던 핵심협약 4개 중 3개를 이행하게 됐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30년이 되도록 이 나라가 ILO에 했던 비준 약속을 완전히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30년 동안이나 하지 못했던 비준을 한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를 높이 평가해야 할까.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하지 못했던 비준을 한 것이니 분명히 평가할 만하다. 공약했던 대로 노동존중 사회의 실현을 해내지 못했어도 그 실현의 의지를 수시로 밝혀 왔다는 것에 대해서, 3개의 핵심협약을 비준한 데 대해서 평가해 주고 싶다. 하지만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다른 공약의 이행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높이 평가하지 못하겠다. 진정으로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해서라면 공약했던 핵심협약 모두를 비준했어야 했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문재인 정부는 틈만 나면 노동존중을 말했어도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지 못했다. 오히려 수도 없이 반복되는 노동존중의 말은 이 나라 노동운동이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한 투쟁에 나서는 데 장애가 됐다고 해야겠다. 이 나라 노동운동은 비정규직·최저임금·노동시간·노동기본권 등 노동자를 위한다는 권력에 맞서기가 쉽지 않았다. 노동자의 분노를 조직해서 노동을 위한 세상을 모색하고 이를 위해 거창하게 투쟁할 방법을 도무지 찾지 못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에서도 이 나라 노동운동은 할 말이 없다. 감히 투쟁으로 쟁취했노라고 말할 만한 노동운동이 이 나라에서는 없었다. 솔직히 말한다면 비준은 어디까지나 공약 이행을 위한 권력의 일이었다.

4. 이제 문재인 정부가 비준을 공약했으나 비준하지 않은 협약, 일본 정부가 비준을 추진하고 있는 바로 그 ‘강제노동 철폐’에 관한 105호 협약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a) 기존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제도에 반대하는 정치적·사상적 견해를 가지거나 발표하는 것에 대한 제재 (b)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노동력을 동원하고 사용하는 방법 (c) 노동규제를 위한 수단 (d) 파업 참가자에 대한 제재 (e) 인종적, 사회적, 국적 혹은 종교적 차별의 수단”으로 어떠한 강제노동도 금지할 것과 이를 이용한 강제노동을 즉시 철폐할 것을 정하고 있다.

이러한 105호 협약에 의하면 일본에서 문제 되는 것처럼 공무원의 정치적 활동에 대해 제재하는 국가공무원법 등은 강제노동 철폐에 관한 이 협약 위반으로 문제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공무원에 그치지 않는다. 그야말로 노동자 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노동법전을 읽어 보라. 파업 등 쟁의행위를 규제하고 있는 노조법은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서 그 주체, 목적, 절차와 시기, 그리고 수단과 방법 등 광범위하게 규제하면서 이를 위반하는 경우 징역형으로 처벌하고 있다. 당연히 이러한 법령은 위와 같이 파업 참가자에 대한 제재로서 강제노동을 금지한 위 105호 협약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나라는 ‘강제노동 철폐’에 관한 105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노조법상 규제에 반하는 파업에 참여했다고 해서 징역형·형사처벌 등 제재를 받음으로써 노동을 강제당하고 있는 것, 즉 강제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강제노동 철폐를 위해서는 노동자가 파업에 참여했더라도, 그 파업이 노조법을 위반한 불법파업이라고 해도 징역형 등으로 제재해서는 안 되는 것임에도 이 대한민국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이고,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비준을 공약했음에도 105호 협약을 비준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한마디로 노동자 파업을 징역형 등으로 제재하는 법·제도를 계속 유지하겠노라고 밝힌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당신은 ILO 핵심협약 3개를 비준했다고 높이 평가할지 몰라도, 나는 강제노동 철폐에 관한 105호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음으로써 문재인 정부가 이 나라에서 노동자 파업을 범죄로 제재하는 걸 그대로 유지하는 걸 선택한 것이라고 평가하겠다.

돌아보면 노동자 파업을 징역형 등으로 국가 형벌권으로 제재하는 법·제도는 이미 150년 전 단결금지법제 폐지를 통해서 쟁취했노라고 영국·프랑스·독일 등 세계노동운동사가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강제노동 철폐를 위한 투쟁과 함께 노동운동은 전진할 수 있었다. 결코 노동자의 투쟁 없이 국가권력이 스스로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해서 강제노동 철폐에 관한 ILO 협약 비준을 통해서 실현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오늘 이 나라에서 강제노동 철폐에 관한 105호 협약의 비준을 하지 않은 권력을 비난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나아가는 노동운동은 강제노동을 철폐하지 못했노라고 스스로를 냉정히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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