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공간 철거에 나서겠다고 밝힌 26일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유가족이 철거에 반대하며 기억공간 주변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섭씨 36도로 폭염특보가 발령된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역 7번 출구 앞에 확성기를 단 은회색 승합차 한 대가 섰다. 밝은 핑크색 반팔티와 청바지를 입은 한 사람이 운전대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숨을 크게 몰아쉰 그가 소리쳤다. “경찰은 즉시 (세월호 추모공간에 있는) 이 사람들 끌어내기 바랍니다! 나오라고!”

경찰 다섯이 승합차를 에워쌌다. 견인차도 도착했다. “종로경찰서에서 경고방송 하겠습니다. 경찰에서는 의견을 달리하는 단체 간 마찰 방지를 위해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경고드립니다.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승합차 차량은 20분 정도 뒤 경찰에 이끌려 광화문광장을 빠져나갔다. 경찰 통제에 따라 세월호 기억공간 밖에서 “세월호 텐트 철거하라”고 외치던 수십명의 노인들이 “와!” 하며 소리를 질렸다. 서울시가 이달 말까지 철거하겠다고 예고했던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공간의 모습이다.

안전제일 펜스로 둘러싸인 세월호 기억공간

광화문역 7번 출구와 6번 출구 사이 광화문광장에 위치한 세월호 기억공간은 현재 주변 10미터가량이 파란색 ‘안전’ 펜스로 둘러싸여 있다. 경찰은 세월호 기억공간으로 사람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도록 빨간색과 하얀색 플라스틱 펜스를 설치했다. 한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만 펜스를 열어 놓고 출입을 통제한다.

세월호 기억공간 바깥은 경찰의 통제를 받는 어르신들이 있다. 스마트폰에 삼각대를 부착해 세월호 기억공간에 초점을 맞추고 “세월호 텐트를 철거하라”거나 “아무도 기억공간에 들이지 마라”는 목소리를 냈다.

세월호 추모공간 입구 근처에서 철거 반대 1인 피켓시위를 하고 있는 우영옥(61)씨는 “원래 오늘은 1시간반씩 조를 편성해 피켓시위를 하기로 했었는데 사람들이 몰려들어 시간이 줄었다”고 밝혔다. 함께 1인 시위에 참여하는 이인숙씨는 “서울시의회 앞 등에서도 1인 시위를 했다가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서울시가 기억공간 철거를 예고한 7월 초부터 1인 시위를 이어 오고 있다.

우씨는 “세월호 기억공간은 유가족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며 “촛불집회를 통해 질서 있는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보여준 의미가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가족과 4·16연대가 ‘반드시 이 공간에 설치하겠다’고 주장하는 게 아닌 만큼 서울시와 유가족, 4·16연대가 협의를 통해 기억공간 존치를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인들 줄이어 방문, 서울시 입장 변화 보일까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당 소속 국회의원, 서울시의원과 함께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공간을 찾아와 철거에 반대하며 농성 중인 유가족과 면담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당 소속 국회의원, 서울시의원과 함께 광화문광장 세월호 기억공간을 찾아와 철거에 반대하며 농성 중인 유가족과 면담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이날 행정대집행이 예고되자 세월호 기억공간에는 유가족과 4·16연대를 찾는 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기억공간을 찾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세월호 기억공간은 서울시민과 대한민국 국민이 촛불집회를 통해 헌정질서를 바로잡았던 공간”이라며 “보존할 만한 가치와 의미가 있는 공간”이라고 밝혔다.

송 대표와 함께 온 조상호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은 “유가족들과는 간담회를, 서울시 공무원과는 면담을 했는데 서울시 공무원은 협의체 구성이 불가하다는 답변만 한다”며 “서울시의회와 오세훈 서울시장 면담도 준비돼 있는데 이런 과정에서 유족 마음이 전달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송 대표가 떠난 뒤 기억공간에 온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유족·시민과 함께 광장 조성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협의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4·16연대에 따르면 오세훈 시장과 유족들은 만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기억공간 운영은 광화문광장 공사까지였다며 유족이 합의를 번복한다는 입장이다. 유족은 박원순 전 시장이 광장 조성 이후 세월호 기억공간을 어떻게 할지까지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세월호 기억공간) 재설치 전제 협상은 이뤄질 수 없다”고 밝혔던 김혁 서울시 총무과장은 정치인들 방문 이후 세월호 기억공간을 재방문해 유가족과 면담했다. 면담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유가족은 26일 저녁 유가족이 의견을 교환하는 확대운영위원회를 열고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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