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이달 12일부터 근로복지공단이 온라인에서 직업환경연구원이 수행한 전문조사 사례를 공개하고 있다. 직업환경연구원은 2006년 산재의료원 산하 직업성폐질환연구소로 출발해 산재의료원과 근로복지공단 통합 등 몇 차례의 조직 변화를 거치면서 지금은 직업성 질환에 대한 임상연구와 업무상 질병 역학조사, 진폐사망 여부 자문 등을 수행한다. 직업환경연구원에서는 매년 530건 안팎의 조사를 수행하며 현재 온라인으로 검색되는 보고서는 157건이다. 직업성 암, 호흡기계 질병, 기타질병 같은 질병분류와 직종·업종 등으로 검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매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 서비스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전히 직업성으로 의심되는 질병의 업무관련성 입증책임이 주로 노동자에게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공개는 의미 있는 일이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의뢰한 역학조사 과정에서는 사업장을 방문해 작업환경을 확인하고, 유해물질 측정·분석을 통해 노출평가를 실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전문적인 조사결과는 그간 개인정보 등의 문제로 산재신청 당사자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개했다. 이것을 온라인을 통해서 누구나 접근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산재판례정보 공개에 이어 환영할 일이고 칭찬할 일이다.

이렇게 공유돼야 정보 부족으로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던 노동자들 앞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낮아진다. 필자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다. 직업성 암이나 희귀성 질환을 진단받고 자신의 질병이 직업으로 인한 것인지, 산재가 되는지 여부를 알고 싶어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오는 노동자들을 직접 만난다. 또는 이들을 대리하는 공인노무사나 변호사들의 자문요청을 받게 된다. 흔치 않은 질병일수록, 잘 알려지지 않은 업종일수록 업무관련성을 따지는 과정은 험난하고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각종 보고서와 논문을 찾고, 유사한 사례가 어디 없었는지 묻고 뒤지고, 해외의 사례나 논문도 열심히 검색해야 한다. 하지만 유사한 사례들에 대한 직업환경연구원 전문가들의 조사자료를 참고할 수 있다면 혼자 붙들고 허비할 수도 있었던 숱한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산재 진행 지체로 노동자들이 고통받는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된다. 누구나 보고서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면 기업과 노동조합, 안전보건 관련 종사자들, 연구자들에게 유사한 직종의 노동자 건강과 작업환경을 둘러볼 계기를 제공해 예방에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직업환경연구원에서는 업무상 질병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요양 신청된 사례들 중 주로 호흡기 질환을 중심으로 근로복지공단 지사나 지역본부에서 연구원으로 자문의뢰한 경우 역학조사를 수행한다. 직업성 암이나 기타 질환에 대한 업무관련성을 따지기 위한 역학조사는 상당부분 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산보연)에서도 수행하고 있다. 산보연에서 수행하는 역학조사 중 직업성 질환의 예방을 위한 중장기 역학조사나 사전예방적 역학조사는 홈페이지에서 전문을 게재해 공유하고 있다. 반면에 근로복지공단의 의뢰를 통해 수행한 업무상 질병 여부 결정을 위한 역학조사 결과는 ‘직업병진단 사례집’이라는 형태로 1년에 한 번씩 30여건을 간단하게 요약해 묶어내고 있어 정보의 충실성도 접근성도 떨어진다. 역학조사 전문은 안전보건공단 내부 데이터베이스에 차곡차곡 쌓여 있을 뿐, 산재신청 당사자도 정보공개청구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확인할 수 있다.

같은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근로복지공단(직업환경연구원)에서 가능한 일이면 안전보건공단(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도 가능해야 한다. 애당초 업무상 질병에 대한 역학조사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의뢰하는 것이니 통합해 사례·유형별로 같이 검색해 접근하도록 한다면 더 효과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유용할 것이다. 공공자원을 투여해서 전문 연구자들을 통해 조사 연구된 자료들이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오로지 개별 사례에 대한 산재승인 여부에만 이용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개되지 않는 자료로 어떻게 산재예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같은 이유로 노동안전보건 단체에서는 진작부터 중대재해조사보고서 공개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업무상 질병 예방을 위한다면 역학조사를,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서라면 중대재해조사보고서를 조속히 공개해야 한다. 공개와 공유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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