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무원노조 부산본부는 지난 9일 오전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한나 조합원의 순직을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공무원노조 부산본부>

부산 동구보건소 간호직 공무원 이한나(사망당시 33세)씨는 숨지기 전날 동료들에게 ‘정말 멘붕’이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겼다. 코호트(동일집단) 격리 병원 업무를 맡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고인은 “너무 부담이 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주변에 토로했다. 고인은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휴대전화로 공황장애 증상과 사회불안장애, 질병휴직, 고민상담전화를 검색했다. 유튜브에서 ‘무기력증 극복 방법’이나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시청했다. 이씨는 지난 5월23일 아침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잠 못 이루던 밤
‘고민상담전화’ 검색했지만…

공무원노조 부산본부(본부장 박중배)는 11일 “고인은 극단적 선택을 강요당했으며 이는 명백한 업무상 재해이자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본부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지난달 1일부터 24일까지 보건소 직원과 유가족을 상대로 사망 경위를 조사했다. 조사단은 “업무재난 상황에서 축적된 육체·정신적 스트레스와 코호트 격리 업무에 대한 부담으로 붕괴된 정신상태가 고인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가중된 업무 부담이 극단적 선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고인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 숨지기 전까지 6개월 동안 기록된 초과근로시간만 460시간이나 됐다. 일은 사무실 밖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보건소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10여개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오전 5시30분부터 이튿날 새벽 2시까지 쉴 새 없이 업무지시가 오갔다고 조사단은 설명했다.

조사단은 “극단적 선택은 어느 하나의 요인으로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고인에게는 극단적 선택을 할 만한 어떤 문제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씨의 동료들은 고인이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하는 성격을 가졌으며 성실하고 꼼꼼한 업무태도를 보였다고 증언했다. 가족들은 고인이 직업의식이 투철해 외식과 외출을 삼가고 가족 모임도 자제했다고 진술했다. 고인은 숨지기 며칠 전 코호트 격리된 한 병원을 담당하게 되면서 주변에 어려움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단은 “고인은 힘든 상황에서 맡은 업무를 완벽히 처리하려 노력했지만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감을 상실했다”며 “이 과정에서 고인이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방식이 극단적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코로나19 최전선 보건소 공무원
업무전환·휴식권 보장해야

조사단은 보건소 공무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촉구했다. 코로나19 방역담당자로 6개월 이상 근무한 직원은 업무를 전환해 직무 스트레스의 원인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육체·정신적으로 소진된 기력을 회복하기 위한 안식휴가도 요구했다.

코로나19 대응 인력의 휴식권을 보장하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조사단은 “공무원 노동자가 자신과 가족의 삶을 돌볼 수 있도록 적어도 주말과 공휴일에는 온전한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며 “최소한의 휴식이 보장될 때 업무에 대한 사명감과 집중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본부는 지난 9일 오전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호직 공무원 이한나씨의 순직을 인정하고 업무재난 상황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박중배 본부장은 “고인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밤낮도, 휴일도 없이 비상근무를 해야 했다”며 “개인이 모든 것을 감당하게 만드는 공직사회의 구조적 병폐가 고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인력 충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 본부장은 “더 이상 공무원 노동자의 인력 부족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그렇지 않으면 일하면서 죽음으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본부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본부와의 면담에서 고인의 순직을 인정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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