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저한테 딱 맞는 직장인 것 같아요.”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요원인 강지현(36)씨는 “어느새 17년이나 됐다”며 지난날을 꼽았다. 2004년에 들어온 첫 직장을 이리 오래 다닐 줄 몰랐다. 대학에 합격했지만 빨리 취업하고 싶어 찾게 된 곳이 인천국제공항이었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외국인을 만나고 싶었던 강씨는 공항이라는 공간에 끌렸다. 호기심에 일을 시작했다.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는 소중해졌고,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자부심도 커졌다. 이 일을 천직으로 여기게 됐다. 강씨는 “바쁠 때보다 오히려 (코로나19로) 승객이 없는 지금 더 무기력하다”며 웃었다.

강지현씨는 지난해 7월부터 인천국제공항공사 자회사인 인천공항보안(옛인천공항경비)에 임시로 소속됐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해 6월22일 1천902명의 보안검색 노동자를 청원경찰직으로 직접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은 자회사 소속으로 머물러 있다.

대통령 옆에서 흘린 눈물
그때는 희망이 보였다

강씨는 원래 용역회사 소속이었다. 용역회사는 4·5년마다 공항공사와 도급계약을 갱신했다. 강씨의 소속은 3번이나 바뀌었다. 두 번째 회사는 도급액이 줄었다며 월급을 깎았다. 결국 회사가 파산해 퇴직금도 소송으로 받았다. 은행에서 대출 상담을 받으면 회사가 바뀌었다며 근속연수도 인정되지 않았다. 이런 경험 탓에 동료들은 고용이 안정된 정규직을 더욱 바라게 됐다.

2017년 5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이 공항에서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한 날이다. 그 전에는 인천공항공사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보안검색요원은 정규직이 없어 도전해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2017년 대통령 선거 때 후보들이 내세운 ‘비정규직 사용제한’‘정규직 전환’ 등의 공약도 한 달, 하루 계약으로 고용이 더 불안한 이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당일 오전에서야 대통령이 인천공항에 온 사실을 알게 됐다. 전날 상사로부터 공사 사장과 면담이 있다고만 들었다. 친한 동료와 대통령을 마주 보고 앉았다. 대통령 왼편에는 1터미널 서편에서 일하던 또 다른 보안검색 노동자가 앉았다. 동·서편은 교류가 없어 강씨는 그를 몰랐다. 지금 퇴사했다는 것만 안다.

현장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와 동료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비정규직이라는 틀에 갇힌 이들의 고충을 알게 됐고 공감했다. 60개 협력업체에 소속된 인천공항 비정규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열악한 처우를 대통령에게 호소했다. ‘목숨값’이 100만원인 소방대원, 부품 하나를 구하려 해도 2차 하청이라 결재를 받아야 한다는 유지·보수노동자의 이야기가 슬펐다. 옆에 앉은 동료는 “비정규직의 마음을 안아 달라”는 말을 남겼다.

“사실 면담 후에도 현실감은 없었어요. 가족·친구들은 기사를 보곤 대통령을 만난 소감을 묻기 바빴고, 보안검색요원은 인원도 많고, 개항 후 내내 비정규직뿐이니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실감하지는 못했어요.”

2017년 8월31일 노·사·전문가 협의회 1기가 출범하고 나서야 직원들 사이에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해 12월26일 1차 합의에서 2천940명의 정규직 전환 대상자를 정했다. 국민 생명·안전과 밀접한 소방·보안검색·보안경비·야생동물통제가 대상 직군으로 결정됐다. 2기 협의회는 2018년 12월26일 “2017년 5월12일 이후 입사자에게는 공개경쟁채용을 도입한다”고 합의했다. 그리고 마지막 3차 합의가 지난해 2월28일 도출됐다.

강지현씨가 속한 보안검색노조는 3차 합의에 최종 불참했다. 보안검색 노동자 1천902명은 경비업법상 문제가 해소될 때까지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합의내용인데, 직접고용에 대한 전제가 없어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보안검색노조는 자회사 잔류와 직접고용 방식에 이견을 보이며 4개 노조(현재 3개)로 갈라지게 됐다.

옛 동료가 던진 돌에 눈물
희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위 ‘인국공 사태’의 계기가 된 일은 3개월 뒤 터졌다. 공사는 지난해 6월22일 보안검색 노동자 1천902명, 공항소방대 211명, 야생동물통제요원 30명을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한다고 발표했다. 4년간 논의를 이어 온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최종 결론이었다.

보안검색요원은 경비업법상 특수경비원 신분인데, 경비업법은 도급관계를 전제한다. 이들을 공사가 직접고용하면 경비원 신분이 해제돼 방호체계에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있었지만, 법률검토 끝에 이들을 청원경찰로 고용하기로 했다. 원래 정규직 전환 대상자로 고려됐던 공항시설·공항운영·보안경비 7천642명은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공정성’이라는 화두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보안검색직군을 직접고용하는 일이 공정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취업준비생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측면에서의 공정성과, 국가직무능력표준(NCS) 등을 통해 입사한 기존 공사 정규직과 비교해 공정하지 못하다는 내용의 공정성 문제가 대두됐다.

이른바 ‘인국공 사태’가 터진 것이다. ‘보안검색요원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꿈의 직장인 공사의 정규직이 됐다’ ‘이들의 현재 평균 연봉이 5천만원이다 (정규직은 불필요하다)’ ‘직접고용되면 5천만원이 될 것이다’ 같은 억측이 나돌았다.

공사 정규직들도 반대 운동을 폈다. 강씨와 함께 일하다가 공사 계약직으로 자리를 옮긴 동료도 부러진 펜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걸었다. 부러진 펜은 공기업·공무원 취업 준비생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박탈감을 느낀다는 의미다.

“배신감이 너무 컸어요.” 강지현씨는 눈물을 보였다.

현재 보안검색노조는 2017년 5월12일 이후 입사해 공개경쟁채용을 하게 될 이들에 대한 구제를 포함한 직접고용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1천여명의 1터미널 보안검색 노동자가 대부분 이 노조에 속해 있다. 2018년 1월 개항한 2터미널 노동자들은 대개 다른 노조 소속으로 직접고용 과정에서 탈락을 우려해 자회사 잔류를 주장하고 있다.

강씨는 보안검색노조의 여성국장이다. 공개경쟁채용 과정에서 탈락하는 이들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남게 하는 등의 구제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들의 수는 적지 않다. 정규직화 논의가 길어지면서 퇴사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공사는 채용을 거듭해 왔고, 지난해 6월 기준 2017년 5월 이후 입사자는 전체의 40%에 육박했다.

3차 노·사·전 협의회 합의는 탈락자에 대한 구체책이 없었다. 최대 4년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현장업무 경험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취업준비생은 NCS를 준비할 수 있지만 현직자에게 시험 준비는 간단치 않다. 시험을 통과하는 것만이 공정한 것인지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강씨는 이들의 정규직화가 공정하지 않다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저희의 모든 경력과 경험을 버리고 시작하라는 것이 공정인지 묻고 싶어요. (대학을 나온) 보안검색 노동자들은 전공이 다양해요. 외국어·경호·체육전공자도 있고, 저처럼 일찍 취업하고 싶어 고등학교만 마치고 온 사람도 있고요. 학력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저희의 일이 아무것도 아니게 돼 버리고, ‘대학을 나오지 않은 네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치부하는 시선 때문에 직원들과 저희는 마음을 다치고 부끄러워해야 했어요.”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직접고용 약속 1년
“대통령 임기 끝나면요?”

보안검색 노동자들은 최대 3개월까지 소요되는 208시간의 교육을 받고 입직한다. 초기교육(40시간)·직무교육(80시간)·특수경비원 신임교육(88시간) 뒤 평가를 통과해야 국토교통부가 발급하는 보안검색 인증서를 받는다. 1년에 한 번씩 이 시험을 다시 치른다. 아르바이트가 불가능한 직업이다.

입직 후에는 엑스레이 판독·신체 검색·폭발물 검색·액체 검색부터 간단한 외국어 회화까지 배운다. 자체 시험도 보고, 고연차 선배가 담당 멘토가 돼 실무를 배운다. 현장경험을 길어도 1년은 해야 보안사고를 내지 않을 정도로 “한 몫을 한다”고 평가한다.

1천902명의 보안검색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기로 한 결정은 1년 전에 났다. 28일 현재까지도 공사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인국공 사태가 발발하며 공사는 직접고용 이행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고, 노사 간 대화는 진전이 없다. 그 사이 퇴사자는 늘어 현재 보안검색 노동자는 1천700여명 남았다.

강씨는 “자회사는 또 다른 아웃소싱”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거나, 공사에서 이 자회사보다 다른 업체를 더 선호해 용역계약을 다른 곳과 맺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현재는 말만 (자회사) 정규직인 비정규직이나 다름없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자회사 임시편제 뒤 나아진 처우는 연 150만원의 복지포인트와 월 9만원의 식권이다. 기본급 인상은 미미하다. 2017년 7월 입사한 5년차 직원의 임금명세서를 살펴보면 자회사 편제 전인 지난해 5월 기본급은 206만원이다. 야근·연장·휴일수당이 급여의 33%에 달하고, 공제액을 빼면 실수령액은 270만원 남짓이다. 올해 6월에도 최종 지급액은 279만원이다. 직능급이 신설돼 월 5만원을 더 받는다. 자회사로 편제된 뒤 재원이 추가된 것은 없다. 자회사로 처우가 나아졌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강씨는 임금이 높아지거나 처우가 개선되는 것뿐 아니라, 직무 특성상 공사가 직접고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당초 대통령의 발언대로 생명·안전을 지키는 핵심 업무이기도 하다.

“보안검색은 항공기가 날아다니는 한 계속 있어야 할 직업이에요. 공사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승객분들이 저희의 보안검색 업무에 비협조적일 때도 있어요.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점에서 공사가 청원경찰로 직접고용하고 저희를 더욱 튼튼하게 관리하고 전문성을 키울 필요가 있어요. 저희는 항공기 안전을 책임지는 마지노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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