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31일 열린 P4G(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에서 서울선언문이 채택됐다. 세계 정상들은 지구온도 상승 1.5도 이내 억제 지향과 탈석탄을 향한 에너지 전환 가속화 등을 선언했다. 하지만 서울선언의 실효성, 온실가스 감축과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한국 정부 의지는 의심받고 있다. 환경전문가들에게 그 이유를 들어 봤다.


녹색미래, 누구의 기회인가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
 

▲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
▲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

지난달 31일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가 폐막했다. ‘서울 선언’이라는 선언을 위한 선언문을 남긴 정상회의가 끝나자 환경단체들은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기후위기 상황에 걸맞은 실효적 대책”을 찾아볼 수 없는 정상회의에서 나온 ‘기후 침묵’ 선언이라고 규정했고, 환경운동연합은 “자가당착”에 가까운 “모순적이거나 공허한 선언”이라고 일갈했다.

실제로 세계 각국이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강화하기를 독려하고 탈석탄·재생에너지 확대를 강조했지만, 정상회의 개최국인 한국이야말로 NDC를 상향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탈석탄 로드맵도 부재하고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도 미비한 수준이다. 게다가 ‘탄소중립’이라는 비전을 천명한 이래로도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가덕도신공항법)을 통과시키거나, 오히려 탄소중립을 명분으로 대규모 벌채사업을 발표하는 정부에게 ‘녹색미래’를 기대하긴 어렵다.

이렇듯 정부의 준비와 인식이 미약하니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주요 과제는 쉬이 시장의 역할에 기대를 거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정부가 그리는 ‘녹색 미래’는 농업의 위기도 시장 기반 해법으로 해결하고, 온실가스 배출량·누적배출량의 차이가 분명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기후위기 불평등에 대해서도 시장 기반 해법을 통한 극복을 ‘촉구’하고 있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들에게 온당한 책임과 규제를 부과하기보다 “친환경 관행과 태도의 내재화”를 권장하며 책임을 방기하기도 한다.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 난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라는 두루뭉술한 말로 퉁치는 것은 덤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전 사회적 전환은 이제 필연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 전환의 주도성을 시장에 내줄 때, 시민과 노동의 위치는 어떻게 편재될 수 있는가. 소수 엘리트 집단의 의사결정 시스템에서 배제된 시민들과, 기업 의사결정 및 생산수단으로부터 소외된 노동자들은 전환의 객체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서울 선언은 “사회적으로 취약한 노동자와 집단을 위해 포용적이고 공정한 전환”을 약속하고 “이 과정에서 전환 촉진을 위한 금융재원 지원”도 언급했다.

그러나 서울 선언이 녹색 미래를 준비하면서도 알뜰하게 챙긴 이 ‘공정 전환’에 관한 내용은 실상 다른 어떤 선언보다 공허하다. 한국은 발전부문에서도 화석연료에 대단히 의존적인데, 전체 경제구조 또한 제조업 중심의 고탄소 산업으로 편성돼 있다. 이 말은 곧 거의 모든 노동의 현장이 전환의 현장이 된다는 뜻이다. 이 노동자들은 어떻게, 어디로 가게 되는가.

정부는 오는 7월, 전환에 따른 노동자 피해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부분적이며 수세적이다. 기업들에게는 이 전환기가 ‘기회’가 될 것임을 강조하면서 노동자들에게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을 마련해 주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전환의 주체를 누구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며 비극적 미래를 예견한다.

하지만 차갑게 말하면, 시민사회나 노동계 또한 기후위기 시대의 전환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담론을 형성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주체가 되기 위한 투쟁이 목전에 있다. 전환의 시대에도 고용의 총량과 질을 유지하자는 수세적 담론을 넘어, 기후위기가 드러낸 자본주의의 모순을 간파하고 전환의 시대를 노동 해방의 ‘기회’로 읽어 내는 담론이 필요하다.


정의로운 전환과 공정전환 사이
이헌석 정의당 기후·에너지정의특별위원장
 

▲ 이헌석 정의당 기후·에너지정의특별위원장
▲ 이헌석 정의당 기후·에너지정의특별위원장

P4G(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서울 정상회의가 끝났다. P4G 정상회의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 강조했던 ‘저탄소녹색성장’을 개발도상국에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회의다.

P4G 정상회의 행사장에 수소차가 무대에 설치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수소차를 몰고 퇴근하는가 하면, 각종 비즈니스 포럼을 통해 대기업들이 탄소중립 전략을 발표한 것은 온실가스 감축보다 ‘녹색성장’을 강조했던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P4G 정상회의에 맞춰 출범한 ‘2050 탄소중립위원회’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저탄소녹색성장위원회보다 인원수가 늘어난 97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탄소중립위는 명목상 각계 분야 전문가들을 망라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한국노총을 제외한 노동계 인사를 찾아볼 수 없다. 또한 기후위기 극복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중소상공인·농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이들은 아예 위원으로 임명되지도 않았다.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되면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없어지고 전기차·수소차로 전환할 경우, 완성차업계 일자리가 3분의 1 정도 사라진다. 뿐만 아니라 주유소와 카센터 같은 관련 산업 전반이 영향을 받게 된다. 석유를 넣을 일이 없으니 주유소는 모두 사라진다. 엔진이 사라지니 엔진오일과 미션오일, 타이밍 벨트 등을 교환할 일이 없어진다.

농업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기후위기 심화에 따라 농작물 작황에 심각한 영향을 입는 것은 물론이고, 화석연료 없는 농업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겨울철 우리가 먹는 채소류는 모두 비닐하우스에서 농업용 면세유 등을 이용해 난방하면서 키운 작물이다. 화석연료 사용을 완전히 멈추는 탈탄소화가 진행된다면, 식품의 생산·가공·유통·판매·폐기 등 전 과정에 매우 큰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석탄화력발전소를 태양광이나 풍력발전기로 바꾼다고 기후위기 대응은 끝나지 않는다.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들이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란 개념이 기후위기 대응을 논의할 때마다 언급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도 뒤늦게 ‘공정전환 계획’을 7월까지 만들겠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철강·자동차·정유·시멘트 등 산업계와 12개 업종별협의회를 포함한 탄소중립산업전환위원회를 구성한 것에 비해 너무나 늦은 것이다.

그간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가 사용하던 ‘정의로운 전환’과 달리 ‘공정전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 역시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능력주의에 기반한 ‘공정’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또 다른 차별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대응은 선한 의지로 이뤄지는 행위가 아니라, 매우 고통스럽고 복잡한 과정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려한 발표와, 대기업의 사업 전략이 무성했던 P4G 정상회의가 아니라 정의로운 전환 방안이다. 자본과 첨단 기술이 가득한 장밋빛 희망보다 우리 현실에 맞는 진중한 접근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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