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기춘 공공운수노조 전국자동차운전학원지부 뉴대성자동차전문학원지회장이 지난 14일 서울시 구로구 지부 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강예슬 기자>

“일반적이지 않은 투쟁이라서 힘들어요. 땅주인을 상대로 싸우니깐요. 왜 싸우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해도 우리 말을 잘 안 들어 주잖아요.”

성기춘(59·사진) 공공운수노조 전국자동차운전학원지부 뉴대성자동차전문학원지회장과 그의 동료 3명은 땅주인과 새로 학원 운영을 맡게 된 학원주를 상대로 고용승계 투쟁을 300일 넘게 이어오고 있다.

지부의 요구는 간단하다. 땅주인 ㅇ씨가 토지를 재임대해 자동차전문학원을 새로 개원했으니 기존 인력을 계속 고용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자동차 기능강사와 땅주인 ㅇ씨는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당사자가 아닌 데다 일반적인 원청·하청 구조와도 다르다. 법적 책임·투쟁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땅주인은 새로 학원 운영을 맡게 된 학원주에게, 학원주는 땅주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중이다. 길어지는 투쟁에 만 60세 정년 나이가 가까워지는 노동자의 속은 애가 탄다.

<매일노동뉴스>가 성기춘 지회장을 만나 장기화하는 투쟁 상황과 속내를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오전 서울 구로구 전국자동차운전학원지부에서 진행됐다.

땅주인을 상대로 한 힘겨운 복직싸움

“IMF 외환위기 때 하던 사업이 잘 안 됐어요. 우연히 ‘준공무원 대우 운전기능강사’라는 글귀를 봤고, 일하게 됐죠.”

성기춘 지회장은 2000년 6월에 입사해 21년 동안 운전기능강사로 일해 왔다. 외환위기로 사업에 실패하면서 찾게 된 밥벌이었지만, 가르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성 지회장은 “핸들이나 가속페달을 못 다루던 사람들이 가르치면 곧 배우고 그러는 모습이 재밌었다”며 웃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했지만 해고는 순식간이었다. 학원을 운영하던 ㅅ씨는 땅주인 ㅇ씨와의 임대차계약 만료를 이유로 지난해 5월 해고를 통보했다. 같은해 7월15일 학원에서 일하던 노동자 4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학원주 ㅅ씨가 지난해 5월에 임차계약 기간 만료로 영업을 못한다고 했어요. 우리는 그해 7월 땅주인에게 내용증명을 보냈죠. 학원을 앞으로 운영할 거면 고용승계하라고요. 운영을 다시 안 할 것처럼 하더니 올해 3월8일에 재개원했어요.”

학원 폐업 이후 노동자는 땅주인을 상대로 싸웠다. 같은 장소에서 직접 학원을 하거나, 학원 운영을 맡길 예정이라면 고용을 승계하라고 요구했다. 20년 동안 3차례 학원 운영자가 바뀌었지만, 과거 ‘노동자-임차인-임대인(땅주인)’ 3자 합의로 고용을 계속 승계해 왔기 때문에 새로운 요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땅주인은 노동자 요구를 거부했다.

전 임차인에게 임대해 줬던 전문학원 지정증을 ㅇ씨는 지난해 10월 자신의 명의로 돌려놓았다. ㅈ씨에게 토지 임대 및 학원 운영을 맡겼고 지정증을 임대했다. 같은 자리, 같은 시설에서 운전전문학원이 운영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땅주인은 컨테이너 형태로 된 노조 사무실과 노조 소유 집기를 지난해 12월 무단 철거했다. 지회는 노조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사측이 이번을 기회로 조합원을 잘라내려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건조물 침입·노조 업무방해·절도·재물손괴 혐의로 ㅇ씨를 일산동부경찰서에 고발했고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위장폐업으로 노조탄압,
51개 지회가 5개로 감소”

현 땅주인은 과거 땅주인과 친족관계로 2003년 위장폐업 전적이 있던 터라 노조의 ‘노조탄압’ ‘위장폐업’ 의혹은 더 커진다.

“2000년에 이곳에 노조가 결성됐어요. 2002년도에 당시 학원이 잘 되니 땅주인(당시는 현 땅주인의 아버지)이 학원을 한 1년 정도 직접 운영했죠. 그런데 2003년 3월 경영상의 어려움 때문이라며 폐업했어요. 당시 운전면허학원가는 비수기와 성수기가 명확히 구분됐거든요. 비수기 때 문을 닫아 노조를 와해하려 한 거죠.”

당시 위장폐업 철회 투쟁은 노동자 승리로 끝났다. 땅주인은 학원운영 사업에서 손을 뗐고, 새로운 ‘임차인-임대인(땅주인)-노동자’ 3자 합의로 고용승계가 이뤄진 것이다. 이후 꽤 오랜 세월 문제없이 일했지만 같은 문제가 또다시 불거진 셈이다. 어느새 투쟁하는 노동자도 나이가 들었다. 한 사람은 만 60세 정년 나이에 다다랐고, 성기춘 지회장도 다음해면 정년 나이가 된다. 하지만 투쟁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한다.

“회사가 없어져 일할 곳이 없어진 것이라면 노조가 없어져도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아니잖아요. 20년 동안 해 왔던 노조활동이 모두 부정당하게 둘 수는 없어요.”

지회는 2000년대 초반 노조설립과 함께 사업장 폐업이 20곳 넘게 잇따르던 운전학원가에서 유일하게 위장폐업에 맞서 승리했다고 강조한다. 당시 50곳이 넘던 지회는 노조탄압과 직원 비정규직화에 맞물려 현재 5곳으로 줄었다.

“우리 학원만 해도 전체 직원 40명 중 정규직이 10명밖에 없어요. 자동차 기능강사는 물론 검정원 등 학원 종사자 모두 3개월이나 11개월씩 근로계약을 맺고요. 퇴직금을 안 주려고 하는거죠. 정규직 전환을 시키지 않으려 20개월, 21개월씩 일하게 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돌아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운전학원가의 고용형태에 관한 실태조사가 없는 탓에 정확한 규모를 알기 어렵지만, 지회는 대부분 학원이 기간제·촉탁직으로 운영된다고 본다. 노조 조직활동이 어려운 구조다.

지회는 학원 이름을 바꿔 새로 영업을 시작한 ㅈ씨와 땅주인 ㅇ씨를 상대로 고용승계 투쟁을 계속할 예정이다.

“투쟁 기한은 정해진 바가 없다. 결론이 날 때까지 투쟁하려 한다”며 성 지회장이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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