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동훈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현장)

“준사법적 성격을 지닌 합의제 행정기관으로서 노사 간의 이익분쟁과 권리분쟁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조정·판정해 산업평화 정착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 홈페이지에 있는 중노위 위원장의 인사말 중 일부다. 홈페이지에는 부당해고를 포함해 노사 간 분쟁이 발생한 경우 노동위로 오라고, 여러분의 힘이 돼 드리겠다며 부당해고 사건을 안내하고 있다.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 역시 그렇게 노동위를 찾았다. 인천지방노동위원회·서울지방노동위원회를 거쳐 지난해 12월8일 중노위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이 받은 부당해고 판정은 말이나 선언에 그치고 있다. 현재까지는 산업평화 정착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위원회는 기본적으로 노사관계에서 발생한 각종 분쟁을 다루고, 그 절차적 장점으로 간이함과 신속함을 든다. 그러나 간이함과 신속함 속에 노동위를 통한 근본적 문제해결 내지 방향성이 전제되거나 기대되지 않는다면 간이함이나 신속함은 공허하다. 노동위를 찾는 노동자들은 부당해고 구제신청 제도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판정 결과에 대한 불신보다 더 큰, 제도 그 자체의 불신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과 관련해 노동위가 갖고 있는 제도적 의미는 기본적으로 원직복직이다.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에서 원직복직은 사용자가 노동위 판정을 존중해 이행할 것이라는 전제를 두고 있지 않다. 그래서 현행 근로기준법은 이행강제금 제도를 따로 두고 있다. 즉, 이행강제금 제도는 사용자가 행정소송으로 부당해고를 계속 다툰다고 하더라도 우선은 원직복직이라는 노동위 구제명령을 이행하도록 강제하기 위한 제도다. 노동위의 간이함과 신속함을 판정 이전까지로 제한해 해석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러나 이행강제금 상한액(2년간 4회 각 2천만원씩 최대 8천만원)이 사용자 입장에서 부담되지 않는 수준이라면 이행강제금 제도만으로는 노동위의 구제명령은 간이함이나 신속함에 다가서지 못한다. 최근 그 상한액을 상향하는 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나 한계는 남아 있다.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은 노동위를 통한 원직복직이라는 문제해결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을 찾았다. 노동위를 통해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누군가 그 책임과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고, 정부 차원에서 그 책임과 역할은 고용노동부밖에 없지 않은가.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서 노사분규 예방과 그 수습·지도에 관한 업무를 근로감독관의 직무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다. 아시아나케이오 노사관계에서 벌어진 정리해고는 노사분규고 그 수습·지도에 관한 업무가 노동부에게 부여된 책임이고 역할이다. 중노위와 지노위는 노동부 장관 소속이다. 노동위원회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 노동위를 소속기관으로 두고 있는 노동부가 노동위가 못다한 책임과 역할을 부담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논리다.

법과 제도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신뢰를 잃어버린 법과 제도는 의미가 없다. 제도의 허점은 제도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할 영역도 있겠지만, 제도개선에 앞서 해야 할 것들,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는지 여부도 신뢰에 영향을 미친다. 부당해고 인정, 원직복직이라는 부당해고 구제신청 제도는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노동자들이 다시 사업장으로 돌아가는 원직복직이라는 신뢰에 기초해야 한다. 그래서 노동위와 노동부는 원직복직이라는 제도의 기초적 신뢰를 위해 그 책임과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고, 책임과 의무에 따른 역할을 현 제도의 범위 내에서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이 서울노동청을 찾아가 그 신뢰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더니 돌아온 답변이 “기다려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 말 앞에 어떠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의미는 담겨 있지 않았다 한다. 단식농성과 오체투지로 억울함을 이야기하는 노동자들에게, 정년을 불과 며칠 앞두고 있는 절박한 해고노동자에게 서울노동청은 “기다려라”라는 말 앞에 어떤 말이든 자신의 책임과 역할에 관한 말을 해야 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 제도에 대한 불신을 없애기 위해 할 수 있는 권한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했고, 제도에 대한 신뢰를 두텁게 쌓아 가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했다.

노동부는 문제해결을 위한 의지가 분명하다고, 노사분규가 수습되기 전까지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사용자나 원청 사용자에게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당해고 구제신청 제도는 불신을 덧입어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부당해고 구제신청 제도에 대한 신뢰를 노동위의 몫으로 미루지 않아야 한다. 최근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중노위 판정에 이어 노동부가 방송사들을 상대로 특별근로감독 실시를 결정했다는 소식과 같은 노력처럼 말이다.

노동자 사건을 대리하는 노무사들에게 가장 큰 보람 중 하나는 해고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다. 합리적 이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법에 따라 부당해고로 판정받은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생각하겠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부당해고 구제신청 제도가 불신을 받고 있다는 증표 중 하나다.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의 구제신청 사건을 대리했던 노무사에게도 하루빨리 그러한 보람이 찾아와 자신의 투병 생활에 위로와 힘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아시아나케이오 해고 노동자들의 해고일이 지난해 5월11이다. 기다림보다 원직복직이 우리가 해야 할 말이고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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