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소속 청년 조합원들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건설현장 저질 광고판 퇴출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인권위에 접수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청년 중 취업준비를 하다 하다 안 돼서 취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사는 사람도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청년들이 건설쪽으로는 올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것 같아요.”

2년여 전부터 형틀목수로 일하고 있는 양효주(35)씨가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건설업이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 못 배운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 때문인 것 같다”는 양씨는 “건설현장이 노령화가 많이 돼 있는데, 청년층이 많이 들어와 일할 수 있도록 인식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한층 심각해진 청년실업난에도 건설기능직의 청년층 비중은 높지 않다. 건설업이 건강한 청년일자리가 될 수 있을까. 건설현장에 2030세대 청년들을 유입하려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 건설노조가 2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 건설기능학교에서 ‘건설노조-건설근로자공제회 소통 간담회’를 열고 이같은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노조가 이날부터 이틀간 운영하는 ‘청춘버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건설기능학교를 수료한 뒤 건설현장에 진입한 2030세대 10여명이 참석해 송인회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사장에게 건설현장에 필요한 개선 사항을 건의했다.

“기술 많이 필요한 직업, 정시 출퇴근에 급여 높은 편”
“건설업 ‘노가다’ 인식 바뀌어야”

노조가 토목건축업에 종사하는 20~30대 조합원 783명을 대상으로 지난 1~6일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건설노동자로 살면서 무엇이 가장 싫은지 물었더니 “사회적 인식”이 49.6%(중복응답)로 응답률 2위를 차지했다. “고용불안”이라는 답변이 63.2%로 가장 높았고, “화장실·휴게실 등 편의시설이 없거나 낙후함”이 43.6%로 3위를 기록했다. 이른바 ‘노가다’로 칭해지는 건설일자리는 사회적 인식처럼 열악하기만 할까.

사무직으로 일하다 건설업으로 업종을 전환했다는 양씨는 “일을 해 보니까 형틀목수 일은 힘이 물론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기술이 더 많이 필요한 일이어서 일터에 똑똑한 사람들도 많고 저 같은 여자들도 더러 있다”며 “사무직으로 일할 때는 퇴근 뒤나 쉬는 날에도 회사에서 연락이 오는 등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이 일을 하니 정시 출근·퇴근을 하고 급여도 훨씬 많이 받아서 만족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양씨는 “물론 팀 내에서 여성이 저밖에 없어서 어려운 점도 있지만 다들 조심해 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양씨처럼 사무직으로 일하다 형틀목공일을 시작했다는 명진(23)씨는 “사무직으로 일할 땐 답답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돈도 많이 벌고 일도 꾸준히 들어오는 데다, 근무가 오후 4시30분에 마쳐서 이후 시간엔 헬스를 비롯해 자기 시간을 갖는다”며 “처음 건설일을 시작하려 했을 때는 힘들까 봐 겁도 많이 먹고 실제 힘쓰는 일이 허다했지만, ‘형님’들이 많이 챙겨 주셔서 괜찮아졌다”고 전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년 건설노동자의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8시간이 53.2%로 가장 많았다. 8~9시간이 31.7%로 뒤를 이었다. 월평균 소득은 350만~400만원 29.1%, 400만~450만원 23%, 300만~350만원 20.9% 순이었다. 하루 임금은 21만~23만원이 32.6%, 15만~18만원이 28.5%, 19만~21만원이 26.2%였다. “건설현장 일을 계속하겠다”는 응답률은 81.2%, “그만둘 생각”이라는 응답률은 3.2%였다. 계속하려는 이유를 묻는 주관식 응답에는 “낮은 접근성에 고임금 일자리” “출퇴근 시간이 칼같이 지켜짐” “투쟁으로 매년 좋아지는 노동여건” 같은 답변이 나왔다. 건설일자리와 관련해 “현장에 곧 은퇴하실 분들이 적지 않으니 젊은 인력이 주력이 돼 현장을 이끌고 건설업을 지고 나가자”거나 “형틀목수를 노가다라고 스스로 비하하지 말고 틈새시장으로 노려 보자”는 답변도 썼다.

인식개선 필요성에 송인회 이사장도 공감했다. 송 이사장은 “건강한 젊은이들이 건설 현장에 유입될 수 있도록 계속 홍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최나영 기자
▲ 최나영 기자

건설기능학교 열악, 정부지원 필요

건설일자리가 양질의 일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과제도 많다. 이날 간담회에서 한 청년 건설노동자는 각종 지원사업에 대한 홍보가 강화됐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그는 “결혼지원금이 있다는 것도 몰라서 못 받았는데, 나중에 출산지원금은 알게 돼서 받았다”고 했다.

건설기능학교 지원을 강화하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건설기능학교는 건설업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형틀목공·철근·플랜트 용접과 같은 기능훈련을 하는 노조 부설기관이다. 건설근로자공제회 기능훈련지원 사업에 참여해 재정을 지원받고 있다. 서울·안산·파주·성남을 비롯한 지역에 있다. 노동자들은 “건설기능학교에서 실습할 때 건물 내부 높이나 넓이가 낮거나 좁다”거나 “자재가 열악해서 못을 박았던 목재에 반복해 박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조합원은 “제가 다닌 학교는 가장 기본적인 것, 화장실도 없어서 지하철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옆건물 화장실을 훔쳐 쓰거나 했다”며 “옷 갈아입는 곳은 당연히 없었는데 화장실만이라도 설치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 이사장은 “정부가 정한 예산범위에서 해야 하는데 예산이 풍족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내년 예산 편성할 때 기획재정부와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겠다”며 “화장실이 없다는 데엔 죄송하다”고 말했다.

노조 관계자는 “청년실업도 건설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청년들이 건설일자리에서 직업 전망을 갖고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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