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10만명의 국민동의 청원 과정을 거쳐 발의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올해 초 가까스로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국회의원들이므로, 형식적으로는 국회가 이 법을 제정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법을 만든 것은 국회의원이 아니다. ‘산재사망 공화국’에서 죽어간 구의역의 김군, 태안화력발전소의 김용균, 수원 고색동 건설현장의 김태규, 다가올 29일이면 1주기를 맞는 이천 한익스프레스 화재 참사 38명의 희생자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산재사망 노동자들의 희생이 이 법을 만들었다.

유가족들이 앞장서서 나와 같은 아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곡기를 끊어, 이 법을 만들었다. 누군가 떨어진 자리에서 또 다시 떨어져 죽는 반복을 막아야 한다는 호소가 이 법을 만들었다. 노동자와 시민이 한목소리로 낸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라는 문제제기에 동감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공감대가 이 법을 만들었다. 그래서 감히 이 법은 노동자와 시민이 (제정 과정에서 10만의 ‘발의안’이 온전한 형태로 통과가 되지 못한 한계가 있다고 해도) 직접 발의해 만든 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 초 시행을 앞두고 있다. 아직 법조항에 새겨진 잉크가 채 마르지 않은 3개월여의 시간이 지금,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어떻게 제정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안타깝지만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와 예방이 담보되지 않는 산업안전보건법의 한계가 그대로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투영됐다. 때문에 시행령·시행규칙에서 조금이라도 보완하고, 채워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무릇, 법과 제도는 너른 포괄성과 보편성을 갖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을 법·제도 설계시부터 우선 적용 대상으로 설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관련 제도가 그 상위에 속한 모든 노동자를 빠뜨리지 않고 포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은 이러한 법과 제도를 바탕으로 빈 구석이 없는지 현황을 살펴 허점을 보완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 사회의 안전·보건에 대한 법과 제도는 가장 취약한 노동자 집단을 골라 먼저 제외하고 배제해 왔다. 그리고 제도의 바깥에 내팽개쳐진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생색내기식 지원 정책을 시행하고, 그들 중 사회적 문제로 심각하게 떠오르는 일부의 노동자군을 제도에 끼워 주는 형태로 땜질식 처방을 하고 있을 뿐이다.

보호와 예방의 테두리 바깥에서 죽음에 이르는 노동자들을 사실상 방치한 채로 산재사망의 심각성을 논하면서 반복적인 정책을 펼치니 실효성을 거둘리 만무하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재해에 무방비 상태인 5명 미만 사업장은 아예 이 법을 적용하지 않고,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50명 미만 사업장은 3년 적용유예를 한 현실이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된 이후 한편에서는 일터에서의 차별이, 노동자의 죽음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지게 됐다는 탄식이 터져 나온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닌 이유이다.

더욱 큰 문제는 노동자와 시민의 염원으로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을 재계가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산재예방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법과 제도가 설계한 그물망의 허술함을 어떻게 보다 촘촘히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지금, 더 커다란 구멍을 내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아니, 아예 한 마리의 물고기도 건져낼 수 없도록 그물망 ‘자체를 못 쓰게 하겠다는 못된 심산으로까지 보인다. 지난 3월25일 7개 경제단체가 제출한 '중대재해처벌법 보완입법(안)’과 4월14일 경총 등 5개 단체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건의서’는 이를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재계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 따른 부작용의 최소화를 위해 시행 전 보완입법을 추진해야 한다며, 사실상 ‘중대재해처벌법 재개정’으로 못박고 공세를 펼치고 있다.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며,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하지 않은 채 법이 제정돼 문제가 많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노동자 1명의 사망은 과도하니 2명으로 ‘중대산업재해’의 범위를 확장하자, 급성중독도 5명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은 안전보건관리책임자도 경영책임자로 봐야 한다 등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재계의 주장은 터무니없지만, 더 큰 문제는 그간 기업이 저질러 온 수많은 산재사망의 책임에 대해서 어떤 사과도 책임에 대한 통감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안전이 제1’ ‘생산은 제2’ ‘이윤은 제3’이라는 안전보건경영 원칙이 모든 일터에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노동자들에게 산재사망의 책임을 덧씌우는 관행을 벗어던지고, 통제와 규율의 대상이 아닌 안전·보건 문제에 있어서 머리를 맞대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그에 합당한 권한을 부여하고, 이를 정착하는 데 기업이 앞장서겠다고 입을 여는 것이 우선이다. 노동자 산재사망의 책임은 기업에게 있고, 이를 뒷전에 두는 기업의 나쁜 관행이 있다면 이를 관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먼저 밝히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왜 자신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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