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서울고등법원이 “(방송)구성작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동자가 아니다”고 판결한 뒤 방송작가들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프리랜서로 간주돼 왔다. “방송작가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는 최근의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번 중노위 판정은 방송작가들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각하한 서울지방노동위원회 판정과도 비교된다. 중노위는 전통적 프리랜서로 여겨져 온 방송작가를 어떤 근거로 노동자로 인정한 것일까. 21일 <매일노동뉴스>가 이번 중노위 판정문을 톺아 봤다.

계약형식에 치중한 초심과 비교돼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해고된 2명의 방송작가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중노위는 근로자성을 판정할 때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판단 법리는 지난 2006년 대법원이 내린 이른바 ‘대입종합반강사 판결’에서 찾았다. △사용자가 업무 지휘·감독을 하는지 △업무 내용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근무 시간·장소는 정해졌는지 △근로제공의 계속성과 전속성이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중노위는 “원고 작성과정에서 근로자들은 사용자(담당 피디 등)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았고, 작가 1명이 수행하던 업무가 정규직 기자가 수행하던 것과 다르지 않다”며 “주된 업무 외에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것은 사용자의 업무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근로계약의 형식적 측면에 주목한 서울지노위 초심과 비교된다. 서울지노위는 방송작가와 MBC가 업무위임계약서를 작성한 것을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근로기준법에 의해 작성이 강제되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방송계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 방송작가가 프리랜서 형태의 업무위임계약 외에 선택지가 없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사건을 대리한 김유경 공인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는 “초심은 사용자가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큰 내용들을 근거로 근로자성을 부정했다”며 “작가 업무를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았고 결과적으로 작가는 (업무재량권이 있는) 창작자라는 도식에 머물렀다”고 비판한 바 있다.

“사용자의 우월적 지위로 취업규칙 적용 안 돼”

초심 판정은 작가들이 원고 작성과 같은 주된 업무 외에 모니터링 결과를 제출한 것을 계약한 업무의 일부라고 규정했다. 반면 중노위는 이들의 업무위임계약서에 업무 내용이 “기타 필요한 업무”로 명시된 의미를 “근로계약에 따라 사용자에게 폭넓게 인정되는 업무지시권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풀이했다.

중노위는 취업규칙이나 인사규정이 적용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사용자의 우월적 지위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보험·취업규칙 적용 여부나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등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중노위는 “취업규칙 등의 적용 여부는 고용형태가 다양해지는 가운데 사용자가 임의로 정할 여지도 있어 이것만으로 근기법상 근로자성이 부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노위 판정에 노동계와 정치권의 환영 논평이 이어졌다.

이수진(비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방송계에서는 개인이 노동구조에 대해 문제제기하면 해고나 보복으로 돌아와 영원한 을로 고통받게 된다”며 “MBC는 행정소송을 포기하고, 고용노동부는 전국 방송국에 기획근로감독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언론노조는 “이번 판정은 방송계에서 무늬만 프리랜서로 통용된 비정규직 차별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며 “방송 사업자는 비정규직 차별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 방송작가지부도 “MBC는 행정소송을 포기해 두 작가를 복귀시키고, 노동부는 무늬만 프리랜서인 작가들의 근로자성을 따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MBC 정책협력부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판정문 송달 후 15일 이내에 행정소송여부를 결정하게 돼 있어 검토 중이며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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