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밀밭

김경희(54) 방과후강사노조 위원장은 유쾌하고 현명한 사람이다. 방과후강사가 겪는 문제와 해결책에 대해 쉽고 분명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선전전을 하다 생긴 에피소드나 일상에서 겪은 즐거운 일을 나누는 일에도 거리낌이 없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할 때도 자신이 보고 들은 경험을 빼놓지 않는다. 전국의 조합원, 방과후강사들과 나눈 이야기는 노조 간부인 그의 자산이기도 하다.

그가 최근 펴낸 책 <꿈꾸는 유령 방과후강사 이야기>(사진·호밀밭·1만3천800원)에는 16년간 방과후강사로 살아 온 저자의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우연히 선택하게 된 방과후강사라는 직업이 그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 “친목회 회장도 해본 적 없던” 그는 방과후강사가 겪는 부당한 대우를 고발하기 위해 전국을 뛰어다니는 노조위원장이 됐다.

‘비정규직 백화점’의 유령

방과후강사가 쓴 차별의 기록

방과후강사는 학교 안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다. 80여개의 직종이 근무하는 ‘비정규직 백화점’ 학교에서 이들은 다양한 차별을 마주한다. 학교와 일자리를 연결하는 민간위탁 업체에 수입의 절반을 떼이는 방과후강사, 채용을 빌미로 교장에게 금품을 요구받은 강사, 각종 대회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도 자신의 이름 대신 정규직 교원의 이름을 올려야만 했던 방과후강사도 있다.

방과후강사들은 스스로를 학교 안 ‘유령’이라고 부른다. 담임교사가 교실을 비워 주지 않아 복도를 서성인 경험 때문이다. 일터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해 존재를 감춰야 하는 모습은 유령과 같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로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없는’ 유령 노동자 방과후강사가 겪는 어려움이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이들의 고통은 더욱 깊어졌다. 예상치 못한 재난은 비정규 노동자에게 가혹했다. 수업 대신 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쓰리잡’을 뛰며 생계를 잇는다. 노조의 필요성이 커졌고 코로나19 확산 3개월 만에 조합원수는 3배 가까이 불어난다. 유령 같던 강사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노동권 핀 꽃밭 꿈꾼다”

노조는 지난해 8월 설립신고증 교부와 고용보험 적용, 수업 재개를 요구하며 처음으로 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저자는 책에서 “꿈꾸던 것들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방과후강사로서 겪어 온 차별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조금씩 사회를 바꿔 가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가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방과후강사가 겪는 어려움을 알린 끝에 재난지원금 대상자가 됐고, 올해 여름부터 고용보험을 적용받게 됐다.

저자는 노동자로서 방과후강사의 권리를 강조한다. 12만명의 방과후강사가 학교 안 유령이 아닌 교육노동자로 당당하게 일하기를 바란다. “방과후강사에 관한 책을 쓸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은 연대를 다짐하는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삭막한 풀밭을 방과후강사들과 아름다운 꽃밭으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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