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지난해 10월16일 ‘근로자대표 제도 개선에 관한 노사정 합의문’을 의결했다. 이 합의에 따르면, 과반수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과반수 노조가 근로자대표의 지위를 누린다. 과반수 노조가 없고 법정 노사협의회가 있는 경우 민주적으로 선출된 근로자위원이 근로자대표의 지위를 갖는다. 노사협의회조차 없으면 근로자대표는 근로자들의 민주적 투표로 선출된다. 근로자대표의 임기는 3년이고, 회사 정보와 정책에 대한 정보권과 협의권을 갖는다. 근로자대표의 활동에 소요된 시간은 일한 것으로 보고, 사용자는 근로자대표를 불이익하게 대우하거나 그의 활동에 개입하거나 방해해선 안 된다.

한국 노동법 체계에서 노동자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다. 전자의 수는 후자의 수보다 적다. ‘디지털 경제’가 확산하면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더 많아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근로기준법은 전체 노동자를 위한 ‘노동기준(labour standards)’을 규율하는 법이 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사용자와 정상적인 계약을 맺은 종업원들의 ‘취업 계약과 조건(the terms and conditions of employment)’을 규율하는 법으로 기능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이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한 채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경사노위 합의에서 말하는 근로자대표는 노동자가 아니라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근로자, 즉 종업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합의의 의미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노조 조직률이 11% 안팎에 머무르고, 노조 조직들이 정규직이나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대기업과 공공부문 위주로 구성된 현실에서 민간 중소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체계를 꾸리는 것이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가운데 근로자대표와 관련된 것으로는 135호 ‘노동자대표 협약’이 있다. 이 협약은 ILO 총회, 즉 국제노동회의가 “고용에서의 반노조 차별행위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것을 명시한 1949년 ‘조직할 권리와 단체교섭’ 98호 협약에 규정된 조건을 보충할” 목적으로 1971년 6월23일 채택했다.

협약 1조는 “사업체의 노동자대표(workers’ representatives)가 현행 법령, 단체협약 그 밖의 노사 합의에 따라 행동하는 한, 노동자대표로서의 지위나 활동을 이유로 또는 조합원이나 노조활동 참가를 이유로 행한 해고를 포함한 불이익 조치들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협약 2조는 “적절한 수준에서 노동자대표가 그 직무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기업으로부터 적절한 편의가 제공돼야 한다”면서 “이 경우 국내 노사관계 제도의 특성이나 당해 기업의 필요와 규모 그리고 능력이 고려돼야 하며”, “그러한 편의의 제공은 당해 기업의 효율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135호 협약이 말하는 노동자대표는 “국내 법령이나 관행으로 인정되는 사람”으로 “노조 대표, 즉 노조나 조합원이 지명하거나 선출한 대표”이거나 “해당 기업의 노동자들이 국내 법령이나 단체협약에 따라 자유로이 선출한 대표로서 관련국에서 노조의 배타적 특권으로 인정되고 있는 활동이 그 임무에 포함돼 있지 아니하는 자”를 뜻한다.(3조) 또한 협약은 “보호 및 편의를 제공받을 권리를 가진 노동자대표의 종류를 국내 법령, 단체협약, 중재판정 또는 법원의 판결로 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4조)

근로자대표 제도에 관한 경사노위 합의는 큰 맥락에서 ILO의 135호 노동자대표 협약의 내용에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ILO 협약들을 읽어보면 노동조합(trade union)보다는 ‘노동자단체(workers’ organization)’라는 표현을 훨씬 많이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ILO 기본협약인 87호 협약이 말하는 결사의 자유 주체도 노동자단체고, 98호 협약이 말하는 단체교섭권 행사의 주체도 노동자단체다. 노조는 노동자단체의 한 형태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노조가 노동자단체인 것은 분명하나, 노동자단체가 무조건적으로 노조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참고로 일본을 따라 trade union을 노동조합으로 번역하는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는 trade union을 직업동맹이라 번역한다.

국제노동회의가 채택한 날로부터 두 해 지난 1973년 6월30일부터 효력을 갖기 시작한 ILO 135호 협약은 지금까지 85개 나라가 비준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김대중 정권 때인 2001년 12월27일 비준했다. 법과 관행 모두에서 상급노동단체 전임자뿐만 아니라 기업별노조 전임자의 임금까지도 노조가 지급하도록 강요하는 노조법을 가진 나라인 일본은 당연하게도 135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일본에도 우리나라의 근로자대표 제도와 비슷한 종업원대표 제도가 있으나, 한국의 제도처럼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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