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2월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청문회에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보험사기꾼들이 제출한다는 요추부염좌 진단으로 의원들의 질책을 받았다. 사실 요추부염좌는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다치는 사고성 재해지만, 최정우 회장이 그런 사고를 당했을 리는 만무하다. 포스코는 2016년 이후로 한 해 평균 4명이 중대재해로 사망했다. 이러한 사고성 재해와 별도로 2010년에서 2019년까지 포스코 노동자들의 사고성 재해는 175건, 질병 산재는 43건에 불과하다. 특히 직업성 암으로 산재를 신청한 사건은 5건에 불과하고, 그중 3건이 승인된 바 있다. 그리고 2월18일 대구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포스코 포항제철소 선탄계 수송반에서 29년간 근무한 바 있는 노동자의 특발성 폐섬유화증을 업무상질병으로 승인했다. 포스코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중 특히 직업성 암 사안의 판정서와 전문조사보고서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일단 직업성 암 신청 및 승인 건수가 사실상 없었다. 포스코 노동자들은 1만7천명이 넘는다. 산업보건학에서 일반 암 사안 중 직업성 암으로 추정되는 비율은 통상 4%로 추정한다. 포스코가 1968년에 출범한 회사임을 고려하면, 사실상 직업상 암 사건은 없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나마 인정된 사건은 2017년 다발성골수종 및 악성중피종, 2018년 악성중피종 3건, 그리고 최근 특발성 폐섬유화증 4건에 불과하다. 노동자 숫자, 발암물질 규모, 철강업의 특징, 기업 역사 등을 보면 최소한 직업성 암 100건 이상은 이미 산재로 승인됐어야 한다.

둘째 산재 신청에 대한 배제와 폐쇄적이고 억압적 노무관리문화다. 애초부터 군사적 노무관리문화가 포스코를 지배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노동자의 직업병이나 산재 신청은 배제됐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나 투쟁은 없었다. 퇴직 후에도 관리되는 기업문화와 폐쇄적 지역주의 특권으로 인해 퇴직한 노동자들은 자신의 직업병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나마 노조가 출범하고 포스코 직업병 문제가 집중적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오랜 세월 지속한 포스코의 배타적 노무관리 지배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직업병을 인식하거나 교육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 포스코 공정 대부분은 발암물질을 발생시킨다. 코크스의 원료라고 할 수 있는 석탄을 취급하는 공정에서는 결정형 유리규산 노출로 인해 폐암과 특발성 폐섬유화증이 유발될 수 있다. 화성공장이라 불리는 코크스 오픈 공정에서는 코크스오픈배출물질(COE)과 다핵방향족탄화수소(PAHs)로 인해 폐암·백혈병·신장암·방광암·전립선암이 발생할 수 있다. 석면 및 석면포 사용으로 인해 폐암·후두암·악성중피종 등이 발생한다. 그 밖에 6가 크롬·니켈·비소·전리방사선 등도 방출된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은 수십 년간 퇴사할 때까지 자신이 종사하는 공정에서 발생하는 발암물질이 무엇인지 그 어떤 교육도 받지 못했다.

넷째 포스코는 직업성 암 산재를 적극적으로 무시하거나 왜곡했다. 최근의 특발성 폐섬유화증 사건에서 포스코는 사업주 의견을 통해 분진 노출기준(5mg/㎥) 미만인 세제곱미터당 0.0445~2.662밀리그램에 불과해 안전하다고 했다. 그 근거로 1994~2001년 작업환경측정결과를 제시했다. 발암물질에 대한 작업환경측정결과는 30년간 보존해야 함에도, 이 중 일부만 제출했다. 그런데 노출기준 미만이라도 안전한 것이 아니다.

특히 역학조사에서도 기존 포스코의 작업환경측정결과 신뢰성에 상당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포스코에서 벤젠 측정은 화성공장에서만 실시됐고, 1994년부터 2000년까지는 0.0~0.75피피엠(ppm) 수준이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작업환경측정에서는 불검출되거나 가장 높은 수준은 0.045ppm이었다. 이는 기존의 문헌연구(영국 사례)와 2000년 및 2006년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전문조사에서 현장 측정치(0.366ppm)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결국 다발성골수종 사안에서 업무상질병판정위는 포스코의 주장과 달리 과거 노출수준이 10ppm을 충분히 초과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 밖에 석면으로 인한 악성중피종 사안에서도 포스코는 1992년 이후로 사용하지 않아 안전하다고 했지만, 실제 역학조사 과정에서 보일러 배관 수리 과정 등 사업장에서 광범위하게 보온재 사용 등으로 인해 이미 노동자들이 노출됐음을 인정한 바 있다.

포스코 직업성 암 사건을 보면 한국에서 노동자들의 현실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막장보다 더한 곳에서 수십 년간 숨죽여 일했던 노동자들의 직업병을 왜곡·은폐하고, 산재 신청 권리를 차단하는 것은 노동자의 생명을 죽이는 행위나 다름없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