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동의안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국제사회에 했던 약속을 이행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할 권리를 줘야 한다는 기본협약 정신이 국내법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고 있는 데다가 미비준 기본협약도 여전히 남아 있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쌓여 있다. 큰 산을 하나 넘었을 뿐 갈 길은 아직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98호) 비준동의안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호) 비준동의안 △강제 또는 의무노동에 관한 협약(29호)을 대통령 재가를 거쳐 ILO 사무국에 조만간 기탁한다. 정부가 비준서를 기탁한 시점부터 1년이 지나면 기본협약은 발효되고,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비준서 기탁 후 1년이 지나야 발효하는 까닭은 노사 당사자와 국가 기관 등이 기본협약 이행을 위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내 노사는 향후 ILO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한 2차 공방의 시간을 보낼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개정한 노조법은 근로자 개념을 넓히지 않고 대신 노조 가입범위를 넓히는 방식으로 특수고용직·해고자 등에 노조를 할 수 있는 우회로를 부여했다. 법대로라면 특수고용직이나 자영업자의 단결권 행사는 여전히 쉽지 않다.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전문가 패널은 노조법의 근로자 개념을 개정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기본협약과 충돌하는 노조법을 재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탁 후 1년이 지나면 노조법의 해당 조항은 무효가 되고 새로운 법인 기본협약을 따라야 한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노조법 개정과 해석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다.

여전히 미비준한 강제노동 철폐협약(105호)도 남은 숙제다. ILO 회원국 187개국 중 해당 협약을 미비준한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동티모르·중국·일본 등 11개국에 불과하다. 이 협약은 2차 세계대전 후 국가 차원의 강제노동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에서 채택됐다. 정치적 견해와 의견 표명, 파업 참가에 대한 제재 수단으로 강제노동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우리 국가보안법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이 협약 내용과 맞지 않는다. 정부는 105호 비준에 대해서는 형벌체계와 분단국가 상황 등을 고려해 장기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양대 노총과 시민·사회단체는 “ILO 회원국의 가장 기초적 의무이자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 기준으로서 105호 비준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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