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월2일 충청남도 부여군청에서 기초생활수급 지원문제로 담당자와 이야기 중이던 민원인이 군청 모니터를 부수고 있다. 민원인은 파손죄로 경찰에 연행됐다. <공무원노조>

서울 강동구청에서 불법 주·정차 민원을 접수하던 공무원 A씨가 지난 6일 강동구 광진교에서 투신 후 실종된 일이 공무원 사회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 A씨가 스스로 생을 등진 원인이 민원 스트레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A씨 가족은 “민원을 들어주는 일이 힘들다”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고 했고, A씨 상사는 “민원인들에게 ‘왜 내 차를 단속했냐’며 욕을 먹는 일이 많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현장 공무원들은 “내게도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일”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악성 민원이 거듭하면서 정부가 2018년 만든 대응 매뉴얼이 있긴 하지만 실효성이 낮다는 비판이 높다.

민원 응대 매뉴얼 있지만 ‘유명무실’

정부는 2018년 민원 담당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공직자 민원응대 지침을 전 행정기관에 배포했다. 민원응대를 상황별·단계적으로 구분했고, 대응 절차도 체계화했다. 폭언이나 성희롱 발언 때는 1차 경고를 하고, 지속할 경우 통화 녹음사항을 알린 후 법적 경고조치를 한 뒤 통화를 종료하도록 했다.

그런데 현장에서 매뉴얼은 힘을 쓰지 못했다. 서울 강동구청에는 한 민원인이 안전신문고앱이나 통화로 하루에 110건 넘는 민원을 제기하는 일도 있었다. 통화 녹취에 따르면 이 민원인은 일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공무원이 경고 발언을 하고 전화를 끊을 때까지 쉬지 않고 욕설을 했다. 울산 북구청에서도 지난해 6월까지 반년 동안 무려 125건의 폭언·욕설 전화가 걸려왔다.

같은 내용의 민원을 다수가 제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200~300명이 모인 익명의 오픈채팅방에서 소위 ‘좌표’를 찍으면 한꺼번에 몰려와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들은 민원 내용과 민원을 처리하는 담당 공무원의 실명, 전화번호를 공유했다.

최승혁 공무원노조 2030청년위원장은 “매뉴얼에 따라 ‘벨이 세 번 울리기 전 수화기를 들고 감정적 표현 논쟁을 피하며’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있기도 한다”고 전했다.

매뉴얼은 법적 조치 방법을 안내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매뉴얼에 따르면 법적 조치를 위해 공무원은 민원인에게 녹음과 녹화 사실을 사전에 고지하고, 법적 조치를 취한다고 1~3차례 구두 경고를 해야 한다. 이후 감사부서에 통보한 뒤 조사를 요청하고, 조사 결과를 토대로 법무부서에서 결정이 나오면 민원인에게 이 사실을 통보한다. 그제서야 기관 차원에서 법적 대응을 한다.

주먹은 법보다 가깝다. 법적 조치는 폭언·욕설을 하던 민원인이 해당 기관에 찾아와서 행패를 부려야 이뤄진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연행해야 끝난다는 뜻이다. 지난해 5월 경상남도 김해에서는 지속적으로 폭언을 하던 민원인이 김해 북부동행정복지센터를 찾아와 유리컵으로 공무원의 머리를 가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부산 금정구청에서도 2019년 7월 민원인이 민원 창구를 넘어 사무실 안쪽까지 들어가 칼을 휘둘렀다. 2020년 2월 부산 영도구 봉래1동 주민센터에서도 칼부림 난동이 있었다. 이들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연행됐다.

민원 건수 제한하고 절차 강화 필요

현장 공무원들은 무분별한 민원을 막기 위해 민원 건수나 요건을 제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승혁 위원장은 “스마트폰 앱으로 간편하게 민원을 넣을 수 있게 되자 민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만큼 악성민원도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정호민 노조 강동구지부장은 “한 달에 300건이 넘는 민원을 넣는 등 민원을 지나치게 쉽게 넣을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 왔다”며 “민원신고 건수를 제한하거나, 민원 제기 기준을 좀 더 엄격하게 적용하는 쪽으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공무원노조 관계자는 “공무원 폭행·사망, 자살 사건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며 “(악성 민원) 대응책을 정리해 정부와 교섭할 때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주석 공노총 제도개선위원회위원장도 “이르면 다음주 중으로 현장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으려고 한다”며 “정부 정책협의체를 통해 정리된 의견을 전달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