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금융노조는 지난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화금융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화생명보험의 제판분리 시도는 단체협약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이재 기자>

보험사들이 잇따라 보험상품 제조와 판매를 분리하는 이른바 ‘제판분리’에 나서면서 노동계가 공동대응에 나섰다.

사무금융노조(위원장 이재진)는 지난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화금융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화생명보험과 미래에셋생명·현대해상·KB손해보험 등 보험사의 제판분리 시도에 대응할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한화생명 18일 판매조직 법인설립 의결
노조 “동의 없는 전직 추진, 단협 위반”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재진 위원장은 “금융위원회를 포함한 정부는 보험사의 이 같은 제판분리 시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노조는 공대위를 구성해 사용자쪽의 제판분리 시도를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한화생명보험이 제판분리를 추진하면서 단체협약을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노조 한화생명보험지부(지부장 김태갑)는 사용자가 조합원의 타회사 전직 추진시 지부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고용안정대책 조항을 단협에 두고 있다. 한화생명보험의 제판분리시 영업조직에서만 약 1천400명의 조합원 전직이 예상되는 만큼 단협 위반 소지가 크다.

김태갑 지부장은 “경영진은 제판분리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오히려 전속판매채널 강화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업계에 법인보험대리점(GA)이 늘어난다는 막연한 이유와 허무맹랑한 숫자놀음으로 보험업계 최고 경쟁력을 가진 한화생명보험 전속판매채널을 포기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한화생명보험은 이날 오전 같은 건물에서 이사회회의를 열고 제판분리를 의결했다. 내년 4월께 약 1천400여명의 영업조직을 비롯한 전속 보험설계사 2만여명을 모두 자회사형 GA로 옮길 계획이다. GA는 다양한 보험사의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보험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대리점이다. 기존 보험사의 보험설계사는 소속한 보험사가 만든 상품만 판매할 수 있다. 다양한 상품 비교가 가능한 이점 때문에 최근 보험업계에서는 GA의 판매성과가 더 높은 추세다.

설계사 이탈·고용보험 적용에 자회사형 GA 설립
노조 “인건비 줄이고 자산운용 키우려는 목적”

GA가 보험 판매채널의 대세로 떠오르면서 제판분리도 각광을 받고 있다. △삼성생명 △삼성화재 △신한생명 △DB손해보험 △메트라이프생명 △ABL생명 △라이나생명이 자회사형 GA를 도입했거나 할 계획이다. 미래에셋생명도 내년 3월 제판분리를 최근 공식화하면서 채널혁신추진단을 출범해 약 3천300여명 규모의 판매조직 분리를 시도하고 있다. 노조 산하 미래에셋생명 3개 지부는 노조와 함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판매사들이 잇따라 제판분리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사용자쪽은 공통적으로 보험설계사 유지를 꼽는다. 내년 1월 시행하는 보험설계사 초년도 모집수수료 1천200% 상한제도 때문이다. 이 제도는 보험설계사가 고객을 보험에 가입시킨 뒤 회사로부터 받는 모집수수료를 고객의 1년치 보험료(1천200%)로 제한한 조치다. 실적이 좋은 전속보험설계사를 데려오려고 GA가 잇따라 이 모집수수료를 올리는 데 제동을 건 조치다. 그러나 GA는 여전히 추가 수당을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GA로의 보험설계사 이동은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사용자쪽은 자회사형 GA를 설립해 이런 흐름을 차단하고 고능률 보험설계사를 붙잡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다른 원인은 내년 7월부터 확대하는 고용·산재보험이다. 고용·산재보험 특수고용직 확대 직종으로 보험설계사 포함이 유력해 보험사의 4대 보험료 증가가 예상된다. 이를 회피하고 인건비를 줄이는 방안으로 자회사형 GA 논의가 커졌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보험사들이 보험상품 제조·판매보다 자산운용에 더 집중하려는 목적이란 분석이다. 한 노조 관계자는 “인건비 부담이 커질 판매조직을 정리하면서 기존조직도 슬림화하고, 역량을 자산운용에 쏟으려는 계획”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미래에셋생명은 제판분리를 통해 혁신상품 개발과 고객서비스, 자산운용 중심의 미래형 생보사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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