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민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이르게 잠들었다 깨어난 15일 새벽. 지난밤에만 12개의 재난문자가 도착해 있다. 재난문자의 알림음이 이제는 익숙하다. 쌓여 있는 문자를 확인하고 확진자의 동선을 살펴보는 일이 어느덧 일상이 됐다.

일상이 된 이 재난의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의 파도가 거세다. 지난 13일에는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처음으로 1천명을 넘어섰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은 “본격적인 대유행 단계에 진입한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며 하루 신규 확진자가 “950명에서 1천200명”까지 나올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3단계로 격상해야 한다는 사회적 논의에 힘이 실리고, 방역수칙을 준수해 달라는 간곡한 당부가 이어진다.

사회적 재난 시기, 이러한 재난정보에 대한 접근권은 생존권과 바로 연결된다. 그러나 대유행의 파도 속에서도, 여전히 재난 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조차 접하지 못하고 감염 위험에 내몰려 있는 노동자들이 여럿 존재한다.

지난밤의 재난문자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새벽, 나는 지난 주말 만났던 이주노동자 K를 떠올린다. 이 문자에 담긴 수 많은 경고들은 K에게 가닿았을까?

이주노동자 K는 대기업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지방의 한 공장에서 일을 한다. K에게도 하루 수 차례 재난문자가 도착하지만, 그에게 재난문자는 풀기 어려운 암호 같다. 지역에 확진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주변에 확진자 다녀간 곳이 있는지 알고 싶지만 한국어로 된 정보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 정보들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불안하기만 하다.

K가 일하는 공장에는 1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한다. 사장과 관리자 몇 명을 제외하고는 90% 이상이 이주노동자들이다. K의 동료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K와 그의 동료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몇 단계인지, 단계마다 방역수칙이 어떻게 변하는지, 의심증상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검사와 치료는 어디에서 받을 수 있는지, 한 번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공식적인 정보를 얻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코로나19에 대한 정보는 사회관계서비스(SNS)망의 이주노동자 커뮤니티 채널에 올라온 내용에 의지하고 있는데, 그것들이 정확한 내용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어서 불안하다.

행정안전부는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Emergency Ready’라는 앱을 만들어서, 외국인을 위한 재난 알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은 이런 서비스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더욱이 이 앱에서는 오직 영어와 중국어 2개 언어로만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이들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도움이 되기 어렵다. 질병관리청에서 운영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정식 홈페이지’의 경우도 한국어 외에는 영어와 중국어로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5월, 여성가족부 산하기관인 한국건강가정진흥원 소속 다누리콜센터에서 코로나19 관련 방역수칙 등을 12개 언어로 번역해서 다문화가정에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역 곳곳의 이주노동자들에게 실제 어떤 정보들이 얼마나 가닿았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센터에서는 24시간 다국어 상담과 실시간 통역 서비스를 통해서도 이주노동자를 지원하고 있지만, 역시나 그런 채널이 존재하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이주노동자들이 다수다. 이마저도 이주노동자가 직접 구체적인 문제나 의문에서 출발해서 상담을 접수한 이후의 지원책이다. 긴급하고 중요한 재난정보들이 재난문자와 같은 형태로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재난정보의 불평등은 결국 재난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K와 동료들은 하루 12시간 넘게 공장에서 일한다. 코로나19가 처음 유행하던 올해 2월 무렵에는 다만 한 장이지만 회사에서 마스크도 주고, 손 소독제도 작업장에 놓아뒀다. 언젠가부터는 출근길에 하던 발열 체크도 멈췄고, 손 소독제도 사라졌다. 생산라인에 따라서 K와 동료들은 어깨를 바로 맞대고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점심과 저녁을 해결하는 회사 식당에서는 칸막이 하나 없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밥을 먹는다. 금속으로 된 부품에 고열을 가해 모양을 만들고 다시 찬물에 식히는 작업을 담당하는 동료들은 작업장의 열기와 습도를 견딜 수 없어 아예 마스크를 끼지 않은 채로 일을 한다. 일터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수칙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관리자와 말도 통하지 않으니 항의를 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어려운 생계에 대한 걱정으로 감염에 대한 두려움을 애써 누른다.

긴급하고 중요한 재난정보와 방역수칙이 사회 구성원들 모두에게 가닿지 않는다면, 감염의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노력에도 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재난시기,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안전한 일상을 위해 재난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확대하려는 여러 노력이 시급하다. 그중 하나의 노력으로 하루 빨리,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모어를 가진 이주노동자들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로, 재난정보가 가닿기를 바란다.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recherche@cnnodo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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