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이 눈앞에 다가왔다.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와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으면서다. 그런데 노동계는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여전히 국제노동기준에 미달한다고 비판한다. 노동현장에 악영향을 미칠 독소조항들이 남아 개악 기조가 유지됐다는 것이다. <매일노동뉴스>는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ILO 기본협약 취지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살펴봤다.

“노조법 2조 ‘근로자’ 정의 넓혀야”

ILO 기본협약 중 한국이 아직 비준하고 있는 협약은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98호), 강제근로에 관한 협약(29호), 강제근로의 폐지에 관한 협약(105호)이다. 이 중 국회는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항(87호·98호)과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조항(29호) 등 3건을 심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ILO 기본협약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노조법 개정안엔 실업자·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지만, 노조법 2조4호 라목의 단서조항을 삭제하는 형식으로만 이뤄졌다는 지적이다. 노동계는 노조법 2조4호 라목 전체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조법 2조4호 라목에는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조로 보지 않는다’고 명시됐다. 단서 조항엔 ‘해고자가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한 경우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단서만 삭제할 경우 노조법 2조4호 라목 본문에 따라 노동부가 여전히 특수고용 노동자·플랫폼 노동자 등을 ‘근로자가 아닌 자’로 보고, 같은 법 12조3항에 따라 노조설립 신고서를 반려하거나 신고증 교부를 지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동계는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기 위해선 노조법 2조1호에 명시된 ‘근로자’의 정의를 넓히고, 노조법 12조3항의 행정관청의 노조설립 신고서 반려규정도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LO가 지적한 문제점 여전히 남아”

노조 임원 자격을 개정한 조항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노조법 개정안에는 ‘노조의 임원은 그 조합원 중에서 선출돼야 한다’는 조항이 ‘노조 임원 자격은 규약으로 정한다’고 바뀌었다. 하지만 기업별노조의 임원·대의원은 그 사업장에 종사하는 조합원 중에서 선출하도록 했다. 해고자·구직자는 기업별노조의 임원·대의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근로자단체·사용자단체는 그들의 규약과 규칙을 작성하고, 완전히 자유롭게 대표자를 선출하며, 관리·활동을 조직하고, 계획을 수립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된 ILO 87호 협약 1절3조를 위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ILO는 해고자·구직자가 기업별 노조의 임원이나 대의원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는데 개정안은 현재와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고 전했다.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조항도 삭제됐지만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타임오프 한도를 초과하는 단체협약은 그 부분에 한해 무효로 한다는 규정도 신설됐다. 타임오프 한도를 초과해 급여를 지급하는 것도 여전히 부당노동행위로 규제했다. 노동계는 “전임자급여 지급에 관한 ILO 권고는 국가가 개입하지 말고 노사자율에 맡기라는 것”이라며 “하지만 개정안은 여전히 국가가 전임자 급여지급을 관리·통제하겠다고 함으로써 ILO 권고·국제노동기준에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개정안에 개별교섭시 차별대우를 금지한다는 조항이 담겼지만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여전히 살아남았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현행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소수노조의 교섭과 쟁의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며 “ILO 권고와 결사의 자유 원칙에 맞게 현재의 창구단일화 제도를 폐지하고 소수노조의 교섭과 쟁의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은 “ILO 기본협약에 따르면 노조활동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선택해 설립할 수 있고 대상도 제한이 없다”며 “행정당국은 (노조활동에) 개입해선 안 되는데 개입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은 “정부안의 독소조항들이 일부 사라지긴 했지만 ILO가 지적해 온 핵심적인 문제들이 여전히 있다”며 “ILO 기본협약을 빨리 비준하고 개정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개정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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