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해 11월20일 오후 경기도 양주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결혼이주여성 및 이주여성 관련 단체 관계자와의 간담회’를 갖고 이주여성 인권 사각지대 해소방안과 지원방안에 대해 참석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여성가족부>

“여성가족부는 차별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다문화 관련)일을 하고 있는데, 저희 센터가 여가부 기관인데도 결혼이민자들이 차별받는 현실이 웃기다고 생각해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이런데 다른 데서 일하는 외국 사람은 얼마나 차별받겠어요.”

수도권의 한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3년차 이중언어코치로 일하는 결혼이주여성 A씨는 “이 일이 좋지만, 오래 다닐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하는 일은 어린 자녀를 둔 다른 다문화가족에게 2개 언어(이중언어) 사용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이다. 외국에서 대학을 나와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은 그는 모국어와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센터에서 요구하는 채용기준보다 훨씬 높은 어학시험 자격도 갖고 있다. 무기계약직이다. 그런데 계약서를 매년 새로 썼다. 바뀐 최저임금 수준에 따라 임금을 지급받기 때문이다.

센터에서 행정·인사 업무를 보는 한국인 직원은 호봉제와 가족수당 등을 받는다. 하지만 결혼이민자를 채용기준으로 명시한 직군은 호봉제가 적용되지 않고 최저임금만 받는다. A씨의 동료는 센터에서 10년 가까이 다문화가족 간 통·번역 일을 전담하고 있지만 최저임금과 1년에 두 번 나오는 명절수당만 받는다.

A씨는 “결혼이민자로서 센터 근무는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이지만 나와 같은 시기에 입사한 사람 중 반 이상이 그만 뒀다”며 “일하는 만큼 대우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자격요건은 까다로운데
10년 지나도 처우는 제자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는 결혼이민자의 처우개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건강가정기본법에 따라 설치되는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여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조금을 교부해 비영리법인에 위탁운영한다. 여가부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으로 전국에 227개 센터가 있다.

센터 사업은 정부가 매년 초 펴내는 ‘가족사업안내’ 지침에 따른다. 지침에는 직원 채용기준과 인건비 가이드라인이 자세하게 명시돼있다. 센터는 1인가구 지원, 가족상담 지원, 아이돌봄 같은 가족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중 결혼이민자를 채용기준으로 내세운 사업은 ‘다문화가족 특성화사업’이다. 해당 사업에는 방문교육지도사·다문화가족 사례관리사처럼 한국인이 취업할 수 있는 직종도 있지만 통번역지원사와 이중언어코치는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한다. 이중언어코치는 올해 1월 기준 전국에 180명이, 통번역지원사는 283명이 배치돼 있다.

통번역지원사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 4급 이상, 이중언어코치는 △한국거주 기간 2년 이상 △한국어능력시험 4급 이상 △대졸 이상의 학력이 필요하다. 통번역지원사의 경우 지속적으로 시험 자격을 갱신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이 일반적으로 외국인 유학생에게 한국어능력시험 3급을 입학기준으로 요구하는 것을 감안하면 높은 수준의 언어구사능력을 필요로 하는 직종이다.

문제는 근무환경이나 업무형태를 고려할 때 이들 직종은 상시근로직군에 가까운데도 인건비를 사업비 항목에서 지출해 임금구조가 불안하다는 점이다. 결혼이민자 통번역서비스는 2009년, 이중언어환경조성사업은 2014년부터 시행됐지만 아직도 이들 직군은 센터 내 직원으로 인정받지 못한 셈이다.

이들 직종 관련 정부지침에는 ‘최저임금 이상 지급’이라는 것 외에 별도의 인건비 가이드라인이 없다. 상담직원과 같은 전문인력이나 행정인력도 모두 호봉 기준표에 따른 인건비 가이드라인을 적용받지만 특성화사업직군만 호봉적용이 되지 않는다.

센터는 위탁운영되기 때문에 센터장과 지자체 조례에 따라 채용조건이 조금씩 다르다. 제주도는 특성화사업인력 모두에 1인당 월 18만원 정도의 처우개선비를 지급하고 경기도는 일부 직군에 1인당 월 15만원의 별도 수당을 지급한다. 이처럼 지자체마다 처우가 다른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송은정 이주노동희망센터 사무국장은 “두 직종이 결혼이주여성만 근무할 수 있는 직종인데 별도의 제도를 만들어 다르게 처우하는 것은 제도적 차별”이라며 “해당 노동자들은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이주민으로서 삼중 차별을 겪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인건비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정부는 2017년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통번역 서비스 직종 등을 정규직 전환 대상 사업이라고 밝혔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취지에 부합하는 형태로 임금체계를 설계하라고 권고했다.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통역업무를 하는 결혼이주여성은 굉장히 우수한 인력인데도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호봉승급이 안 된다”며 “임시방편으로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 업무에 걸맞은 임금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여가부 관계자는 “해당 이슈에 관해 문제제기가 있어 온 것은 알고 있다”며 “기본인력이 아닌 지도사 개념으로 종사자들이 배치돼 있다 보니 급여가 시급으로 책정돼 있다”며 “(처우개선을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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