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F 실태조사에 참여한 학생이 도제학교에서 경험한 일을 그림으로 표현했다.<전남도교육청>
"말로만 도제교육이지 노동이에요. 예를 들어 도제교육 속에 있는 프로그램은 회사에 나가 배워야 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없어요. 감사가 나오면 배운 적 없는 것을 배웠다고 말하게 했어요. 이게 도제교육인지 청소년 노동착취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세요."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한 A학생이 실태조사 설문지에 적어 낸 '불만사항 및 건의사항' 중 일부다. 전라남도교육청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운영 전면실태조사TF가 전남도 내 16개 학교에서 도제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를 23일 공개했다. 실태조사는 16개교 도제학교 참여 학생 644명 중 482명(75%)을 대상으로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이뤄졌다. 사실상 전수조사나 다름없다.

실태조사에서 학생 76.4%는 기업에서 주로 청소(20.4%)·허드렛일(12.1%)·기타 업무(43.9%)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업무가 학교수업 내용과 관련 있다는 응답은 20.1%에 불과했다. 기타 업무 비중이 높은 것과 관련해 TF 관계자는 "학생이 전공과 관련이 없거나 관련이 적은 잡일을 기타 업무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학생 과반수 "도제학교 다시는 선택 안 해"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는 독일·스위스의 직업교육 방식인 도제교육을 본떠 정부가 2014년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2016년 정식 도입됐다. 현장 중심 직업교육 모델로 학교에서는 교사가, 기업에서는 숙련노동자가 기업현장교사로 학생을 가르친다. 정부는 도제학교 확대와 법제화에 힘을 쏟고 있다. 정부는 관련 내용을 담은 산업현장 일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2016년 6월에, 이듬해 9월에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같은 법안을 발의했다. 두 법안은 올해 3월 환경노동위원장 대안으로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지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그런데 교육현장에서는 일학습병행제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는다. 전남도교육청 '일학습 병행제(도제학교) 운영 실태조사'가 이를 속속들이 보여 준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생은 수업과 관련이 적거나 없는 업무를 수행하고 노동환경도 열악했다. 학생 38.3%는 "학교 수업과 기업 업무가 전혀 관련이 없다"고 했고 41.6%는 "업무가 학교수업 내용과 조금 관련이 있다"고 답했다. "업무가 학교 수업 내용과 관련 있게 진행된다"는 답변은 20.1%에 불과했다.

산업재해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컸다. 학생 65.2%가 '일하다 다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대답했는데 이들의 두려움은 괜한 걱정이 아니었다. 실제 일하다 다친 학생이 33.7%나 됐다. 하지만 산재보상을 받은 경우는 산업재해 피해 학생 중 25.5%에 불과했다.

학생들은 "도제학교는 실수"라거나 "도제학교는 반은 망한 사업"이라고 표현했다. 도제학교 프로그램에 따라 현장실습 나간 학생 중 절반이 넘는 학생(53.2%)이 도제반을 다시 선택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도제학교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실태가 이러니 도제학교와 관련한 전면적인 조사와 현장점검이 필요하다 주장이 나온다. 실태조사TF는 "학생 실태조사 결과 도제학교 참여 분야와 주로 하는 일의 미스매치가 발생하고 있어 점검이 필요하다"며 "도제학교 참여 기업의 노동안전 실태점검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설문에 참여한 교사 75%는 "기업체 주도의 도제반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토로했다. "도제반 운영에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교사가 43.8%였다.

김경엽 전교조 직업교육위원장은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한 기업 중심 도제학교는 교육적 목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며 "현장실습이 필요하다면 2주의 현장실습만으로도 (아이들의) 학습발달을 촉진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현장교육이 이뤄지는 기업 다수는 높은 숙련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전남도교육청이 도제교육 추진 과정에서 미흡한 부분을 찾고 보완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개선해야 할 지점을 주로 찾다 보니 실태조사 결과 미흡한 부분이 많이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실태조사 결과를 교육부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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