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혜정 기자
"정권이 바뀌면서 희망을 가졌는데 똑같아요. 촛불을 왜 들었나 싶고…."

금속노조 서울지부 레이테크분회 조합원 강민주(57·가명)씨는 8년 전 문구류 제조업체인 레이테크코리아에 입사해 포장부에서 일했다. 노사갈등은 2013년 불거졌다. 여성 탈의실 CCTV 설치 논란으로 같은해 6월 노조가 만들어지자 회사는 서울에 있던 공장을 안성으로, 2년 뒤인 2015년 다시 안성에서 서울로 옮겼다. 지난해 1월에는 최저임금 인상을 이유로 조합원 21명이 일하는 포장부를 폐쇄하고, 영업부로 전환배치했다. "지방노동위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모두 부당한 전환배치로 판정받았는데, 회사가 또 행정소송하겠대요." 강씨는 "여성노동자가 최저임금은 받더라도 직장에서 고용불안은 느끼지 않게 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빨간 대통령에서 파란 대통령으로 바뀌면 뭐하나"

"노동존중 사회"를 선언한 문재인 정권 3년차에도 정리해고·노조탄압으로 거리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처지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13년째 복직투쟁을 하며 급기야 곡기까지 끊은 콜텍 해고자, 원청인 LG가 물량을 줄였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당한 신영프레시젼 노동자들, 지난해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에도 회사의 직접고용 거부로 투쟁 중인 한국지엠 사내하청 노동자들….

사용자들의 각종 노동탄압에 시달리고 있는 금속노조 11개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26일 오후 청와대 앞에 모였다. 정부와 정치권에 투쟁사업장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공동행동에 나섰다. 시그네틱스·콜트악기·콜텍·한국지엠·레이테크코리아·성진씨에스·신영프레시젼·자동차판매연대·유성기업·아사히글라스·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 400여명이 모였다.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에 실망했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노동존중 사회를 내건 정부에서는 다를 줄 알았다"고 했다. 문영섭 노조 풍산마이크로텍지회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몇 개 사업장 문제가 해결되면서 얼어붙은 땅에도 봄은 오는가 싶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길거리에 내몰려 개돼지 취급도 못 받고 있다"며 "빨간(자유한국당) 대통령에서 파란(더불어민주당) 대통령으로 바뀌었지만 차이를 못 느끼겠다"고 주장했다.

부산 소재 반도체 부품제조업체 풍산마이크로텍(현 PSMC)는 2011년 생산직 노동자 54명을 경영상 이유로 해고했다. 해고자들은 2015년 정리해고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해고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았지만, 복직 후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해 강제휴직에 내몰렸다. 공장은 경기도 화성으로 이전됐다. 조합원들은 지난해 7월부터 부산시청광장에서 농성을 이어 가고 있다.

최저임금 오르자 여성노동자에게 화장실 청소시켜

정영희 성진씨에스분회장은 "회사의 위장폐업·기획폐업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시트커버 봉제업체인 성진씨에스는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삭감해 왔다. 지난해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자 비용을 절감한다며 여성노동자들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켰고, 이에 항의해 금속노조에 가입하자 "원청이 물량을 주지 않는다"며 폐업했다. 노동자들은 노조활동을 막기 위해 원청 코오롱글로텍이 기획한 폐업으로 보고 있다.

정 분회장은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지만 있는 일자리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하지 않느냐"며 "정부가 나 몰라라 하는 사이 기업은 여성노동자들을 거리로 내쫓고 있다.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승열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문재인 정권에서 몇 곳의 사업장 문제는 해결됐지만, 여전히 대다수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며 "더 이상 정부에 노동현안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단결해 투쟁하자"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집회 후 정부서울청사를 거쳐 서울지방고용노동청까지 행진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