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지난해 12월 말 열린 민주노총 9기 임원 선출을 위한 결선투표에서 김명환(53·사진) 위원장은 66% 지지를 얻어 당선했다. 함께 결선투표에 오른 다른 후보 득표율(27.3%)을 훌쩍 뛰어넘는 지지율이었다. 그가 선거운동 기간에 앞세운 ‘사회적 대화’ 참여 방침과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 출범이 맞물린 결과였다.

김명환 집행부는 취임 첫 달인 올해 1월 당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제안한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하기로 했다. 19년 만의 일이다. 조합원들의 지지를 받아 잠시나마 사회적 대화가 신속히 이뤄질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하지만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같은 암초가 곳곳에서 등장했다.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 중단과 재개를 거치는 동안 벌써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달에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개최한 임시(정책)대의원대회가 정족수 부족으로 유회됐다.

경사노위는 이달 22일 '민주노총에게 문을 열어 둔 채로' 공식 출범한다. 민주노총이 내년 1월 열리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를 결정할지는 미지수다. 9기 임원선거 직후나 취임 초기와는 달라진 풍경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김명환 위원장을 만났다.

"대의원 참여 이끌어 내는 힘 부족했다"

- 지난달 중순 정책대대가 정족수 부족으로 유회됐다.

“하반기 정책대대를 여는 것은 올해 초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이미 정한 사업계획이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여부도 4월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정책대대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두 가지가 맞물려 준비된 정책대대였다. 이 과정에서 경사노위 참여 여부와 관련해 찬반 의견으로 갈리면서 쟁점이 됐다. 찬반 논란이 불거졌을 때 정책대대가 안정적으로 치러질 수 있겠는가 하는 의견제기가 있기도 했다. 최대한 조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속에서 대회를 준비했지만 결국 유회됐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고 본다. 첫 번째로는 정책대대에서 민주노총의 3대 중장기적인 목표에 대한 토론을 하기로 했는데, 대의원들을 토론으로 묶어 내는 힘이 약했던 게 아닌가 싶다. 현장토론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지만 말이다. 두 번째로는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안건에 대해 지금까지의 경과는 어땠는지 충분히 알려 주고 소통하고 설명하는 과정이 시간적으로 부족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대의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힘이 부족했던 것 같다. 원인을 복합적으로 파악하는 중이다. 준비 정도가 부족했던 것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집행부에 있다. 더욱 노력하라는 대의원들의 뜻과 현장 분위기를 고민해 앞으로 보다 집중하고, 좀 더 내실 있게 준비하겠다.”

- 한국노총은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하면서 경사노위에 불참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하는데.

“노사정대표자회의 안에 구성된 의제별위원회나 각종 기구에 참여하고 있다.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대화기구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법률과 시행령이 만들어진 것이다. 공식적 출범선언만 남아 있는 단계다. 내용적으로는 사회적 대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에 큰 이견은 없다. 그런데 우리 조직 내에서 결정하기로 한 과정을 봐야 한다. 시행령이 만들어진 이후 노사정대표자회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는 것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은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대의원대회에서 결정을 못 내리면 민주노총은 공식적으로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게 된다. 조직적 결정에 따라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를 준비하고 절차를 밟는 과정이다. 내용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하지만 결정을 집행하는 과정에 있다. 한국노총이 단순히 형식논리를 앞세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의 지난 결정 과정을 한국노총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타깝다’거나 ‘유감스럽다’는 입장이 나온 것이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 말로만 노동존중, 사회적 대화 물음표 키워"

- 지난 임원선거에서 사회적 대화를 공약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지금은 어떤가.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 도중에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불참하는 과정이 있었다. 사회적 대화는 사회 개혁 과제를 노사정 3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각 주체의 신뢰와 개혁의지가 선명할 때 추진동력이 생긴다. 아시다시피 올해 상반기를 거치면서 최저임금제도 개악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말로는 노동존중을 앞세우면서 외려 기업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조치들을 적극적으로 취하고 있다. 사회적 대화 참여에 의문을 갖게 만드는 조건이다. 신뢰가 떨어지면서 ‘기다려라’ 또는 ‘안 되는 것 아니냐’ 하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커질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이 같은 외부 요인이 사회적 대화를 가로막은 하나의 이유로 작용했다. 두 번째로는 사회적 대화에 대한 의지는 있었지만 이것을 조직 내에서 민주적으로 충분히 잘 전달하고, 적극적인 사업으로 배치해 풀어 나가는 과정에서 역량 투입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내부적으로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적 대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현장에 전달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확장했어야 했다. 지도부가 그 대목에서 부족했다. 보완해야 할 지점이다.”

-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사노위가 공식 출범한다.

“민주노총이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고 활동한 지 1년이 돼 간다. 민주노총 규약에 1월 정기대대가 명시돼 있다. 그때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갈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경사노위 출범과 관련해 이번 정기국회가 노사정대표자회의 각종 의제별위원회가 그동안 진행했던 논의의 결실을 만드는 무대가 되길 바란다.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주체들이 민주노총 없이 갈 수 있다고 판단해서 경사노위 공식 출범에 나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민주노총의 참여 결정 과정에서 생각보다 진통이 크기 때문에 기다리면서 소모되는 것들을 차단하기 위해 먼저 출발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공조해서 함께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계속 전달하고 있다.”

"완강한 요구 있는 사업장들과 사회대개혁 총파업 준비"

- 11월21일 총파업을 예고했는데.

“11월 초부터 시작되는 ‘적폐청산, 노조할 권리 쟁취, 사회대개혁 투쟁’의 정점이 되는 날을 21일로 정하고 총파업을 한다. 파업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구체적인 요구가 있다. 우선 정부가 모범사용자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묻지마 자회사’ 등으로 파행을 겪고 있다. 공약을 명확하게 이행해야 한다. 다음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라는 것이다. 교사·공무원을 비롯해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비롯한 모든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과 노조할 권리보장을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이 필요하다. 사회대개혁을 위해서는 노후소득인 연금 관련 제도를 개혁하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이제는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산업재해를 유발한 기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라는 것도 총파업 요구 중 하나다. 이번 총파업 의제는 이른바 ‘임단투 요구’가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선언만 하는 것도 아니다. 완강한 자기 요구가 있는 사업장들이 파업투쟁 대오를 이룰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과 국민건강보험노조·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같은 조직들, 산별노조들이 대오를 형성할 것이다. 올해 상반기 총파업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있다면 이번 총파업은 명확한 요구를 걸고 쟁취한다는 의미가 있다. 기본적으로 10만~15만명이 총파업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목표는 20만명이다.”

- 얼마 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제’를 언급하면서 민주노총 총파업에 우려를 표명했다.

“비가 와도 민주노총 파업 때문이라는 논리다. 노동계가 총파업에 나선다면 왜 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대화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 파업은 무조건 껄끄러운 것으로 여기는 지난 정부 시기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관성적 표현이다. 여당이 개혁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여론이 많은 상황인데, 아쉽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사회적 대화 흐름 막을 것"

- 여당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언급하면서 노동관계법 후퇴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데.

“대단히 문제 있는 행태다. 지난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는 2020년까지 논의하기로 했다. 주 40시간제, 52시간 상한제는 6개월 유예됐다. 인력충원과 교대제 개편 등을 위한 조치다. 하지만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이 확대되면 모든 조치가 무력화된다. 엄밀하게 따져 보고 적용 대상이 있는지를 살펴보자는 이야기는 할 수 있다. 그런데 마치 당장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처럼 몰아가는 것은 노동시간단축이라는 법 개정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다. 말 그대로 개악이다. 대단히 유감스럽다. 노동계와 소모적인 충돌을 부를 일이다. 집권 여당이 사회적 대화 흐름을 막아서는 형국이다. 이해찬 대표가 해당 사안에 대해 ‘고민 지점이 있다’며 말끝을 흐렸다. 정부가 그런 기조를 세우고 집권 여당이 입법화 과정을 밟는다면 대화보다 투쟁·대립 국면이 강화될 것이다.”

-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해야 할 의제는 무엇인가.

"노동 문제를 풀어 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심 축이 필요하다. 산업정책 변화와 노사관계 변화가 그것이다. 산업정책과 관련해서는 제조업 구조조정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과 대책을 사회적 대화로 마련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사용사유 제한 같은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가릴 것 없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사회적 대화에서 다뤄야 할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다."

"제조업 구조조정·비정규직 문제 사회적 대화 의제로"

-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이 취임한 지 한 달 조금 지났는데.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권고를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펼쳐 나가야 한다. '노동부가 변했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지표가 될 것이다. 김영주 전 장관의 경우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두고 노동시간단축에 역행하는 일이라는 입장을 보인 반면 이재갑 장관은 되레 해당 의제를 끌고 나오고 있다. 노동부 산하 잡월드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묻지마 자회사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춰 노동존중 방향에서 전임 장관보다 후퇴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런 의심을 스스로 떨쳐 내기를 바란다."

-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를 기다리는 주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민주노총은 결정한 것은 집행한다. 결정해서 참여하자고 하면 참여하고, 참여해서 법안을 만드는 세세한 것들까지 함께 결정한다. 민주노총이 결합해 대화의 장에서 만들어지는 의제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사회적 대화는 우리 사회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기조는 수미일관하다. 민주노총의 방향은 우리 사회를 보다 발전시키고 개혁적인 곳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노력과 의지가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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