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전선에 선 20대 여성에게 취업시장은 바늘구멍 같다. 은행권 채용비리사건에서 확인됐듯이 구조적으로 남녀를 차별해 채용한다.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해도 회사 고임금·고위직은 남성이 독식한다. 여성들은 회계나 비품관리 같은 보조적 역할을 맡고, 몇 안되는 여성관리자는 기획·예산 등 요직에서 제외돼 현업부서만 돌다 퇴직한다.

결혼·출산으로 휴직이라도 하고 돌아오면 승진에서 배제된다. 연봉협상은 남의 일이다. 임금인상을 얘기하면 "아직도 욕심이 많다"는 말을 듣는다. 육아는 공동의 몫이 아닌 여성의 몫이 된다. 많은 여성들이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동분서주하다 퇴사한다. 어쩔 수 없이 가정과 아이를 선택하는 것이다.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들이 재취업을 하려면 저임금·비정규직을 감내해야 한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주최로 23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추계토론회에서 성불평등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중년·장년 여성들의 척박한 노동현실이 공개됐다. 여성노동을 가로막는 다양한 이슈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법도 제시됐다.

직장내 성차별 버티다 '출산·육아 전쟁'
경력단절 후에는 저임금 비정규직


특성화고 재학 중 공기업에 들어가 3년째 일하는 강유정(22)씨. 그는 3년간 여성이란 성별이 강조된 역할을 강요받았다.

"다과는 항상 여직원이 챙겨야 합니다. 막내 여성이 하지 않으면 '눈치가 없다'는 뒷말이 나와요. 신입 남성 직원이 탕비실에서 컵을 정리하는 모습을 본 한 (남성) 상사가 '남자가 그러는 게 보기 안 좋다'며 같은 부서 여성 직원들을 모아 주의를 주기도 했습니다."

직간접적인 성희롱도 흔했다.

"성범죄 예방교육 후에 남성 차장이 부서에서 가장 어린 여직원을 대상으로 '예를 들면 내가 A씨에게 오늘 좀 섹시하네라고 말하면 안되는 거다'라고 하면서 예시를 가장한 성희롱을 한 적도 있어요. 치마를 입으면 노골적으로 '시선강간'을 하는 상사도 있습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고 국가적으로 저출산 정책을 추진하면서 과거와 달리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두 번의 출산과 육아휴직에 따른 경력단절 후 재취업에 성공한 박선주(39)씨. 이전 직장에서 첫아이를 출산한 뒤 육아휴직 후 복직을 하려고 했는데, 회사는 정규직이 아닌 파트타임 자리를 제안했다. 박씨는 결국 복직을 포기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 직장에 취업한 박씨는 1년 만에 둘째를 임신했다. 임신 소식을 알린 직후부터 불공평한 업무 배정이 이뤄졌다. 승진과 연봉협상에서도 제외됐다.

"불공정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임신으로 경력단절을 경험하고 나면 회사에 밉보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요."

가정에서는 육아·가사와 전쟁을 해야 한다.

"퇴근해서는 종일 엄마를 기다린 애들과 눈 마주치고 얘기하고 밥 먹이고 씻기고 재워요. 그런 후에 남은 집안일을 합니다. 육아와 가사일은 고스란히 내 몫이더라고요."

인하대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60대 박명순씨는 결혼 전 반도체회사 정규직으로 일했다. 결혼을 하면서 일을 그만뒀다. 생계를 위해 7년 만에 취업전선에 나서 자동차 유리 제조업체에 들어갔다. 자신이 비정규직이라는 것을 회사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했는데 월급은 정규직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6년쯤 근무했을 때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에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이 만들어졌다. 여성 비정규 노동자들은 한꺼번에 해고됐다. 그런 다음 구한 직업이 환경미화원이다.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합니다. 정규직 미화원들도 있어요. 용역업체 미화원 월급은 정규직의 절반입니다. 고용불안도 심각하죠."

"범부처 성평등 추진체계와 고용정책 만들어야"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다양한 육아·모성보호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성평등 고용정책을 통한 공적개입을 하지 않고서는 여성들이 생애주기 전체에서 경험하는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상임대표는 "한국 여성고용정책의 대표적 특성은 대다수 선진국가가 주목한 임금격차 해소 등 노동시장에서 성평등·형평성을 추구하는 정책이 없다는 것"이라며 "성평등을 위한 공적개입이 없거나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여성의 이해는 개인이 처한 사업장이 다종한 차별상황에 개별적으로 적응하거나 대처하는 과정에서 파편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특히 "고용·노동 성차별 시정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추진할 범부처 성평등 추진체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효원 청년유니온 정책팀장은 청년여성 정책 확장을 주문했다. 송 팀장은 "정부 정책은 대부분 경력단절 여성 재취업과 직업훈련에 한정돼 있다"며 "노동시장 진입 전후 정책수요를 파악해 시기에 맞는 지원방안을 설계하고 대상을 세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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