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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경기침체 원인과 해법에 대한 논란 ②저성장 시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우선이다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저성장이 여전히 낯설다. “밀물이 들어오면 모든 배는 뜬다”는 말처럼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경제성장을 통해 내부 문제들을 지연시키거나 해결해 왔다. 최근 논란이 된 국민연금만 봐도 그랬다. 고성장 인구증가 시기에 도입된 국민연금은 당시에는 어떻게든 노후소득 보장에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가 도래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국민연금 취지는 본연의 취지 그대로는 실현이 곤란해졌다. 한국 사회가 저성장에 익숙지 않다는 것은 최근 경제 상태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보수야당과 일부 주류경제학자들의 소득주도 성장론 책임론은 쟁점을 한참 이탈한 것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생산성 낮은 내수서비스업 일부에 고용조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경제가 이들 산업에서 약간의 고용조정으로 휘청거리는 수준은 아니다. 한국 경제가 그들이 그토록 칭송하는 박정희 시대 수출 중화학공업 주도로 성장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내수서비스가 아니라 말이다. 보수정부들은 예전부터 저생산성 서비스업의 구조개혁을 주장했다. 서비스산업 선진화니 서비스업 활성화니 하는 정책들이 다 그런 것들이었다. 이들이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공급측 경제학도 서비스 부문의 자영업자와 영세기업을 퇴출시켜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목청 높여 주장해 왔다. 정부의 임금인상을 통한 저생산성 내수서비스 구조조정은 그들도 환영해야 할 일이다.

사실 보수야당이나 주류경제학자들이 오히려 주목할 것은 애먼 소득주도 성장론 때리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제조업 위기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을 보면 2011년부터 7년 가까이 하락 중이다. 1980년대 이후 이렇게까지 장기적으로 제조업 가동률이 하락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조선·자동차·철강·화학 등 중화학공업 전반이 추격성장의 한계와 과잉설비로 인한 위기를 겪고 있다. 그리고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모두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주류경제학 성장이론에 따르면 노동생산성 높은 제조업의 부진은 생산성 향상이 쉽지 않은 서비스업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국민경제 전체의 성장 둔화로 이어진다. 박정희에게서 뿌리를 찾는 보수세력은 소득주도 성장론에 화풀이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뿌리로부터 오늘날 한국 경제를 진단할 일이다.

다음으로, 정부·여당의 통계적 착시 주장은 그야말로 무책임하다. 이들은 2018년 2~7월 취업자수 급감이 인구학적 변화와 제조업 위기 탓이지 정부 정책 때문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또 2018년 1·2분기 하위소득 가계의 소득 감소(가계동향조사)도 조사 표본의 문제이지 실제 상황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청와대는 아예 통계청장을 갈아 치웠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국민총소득 증가율이 2018년 1분기와 2분기 2.0%와 1.5%(전년 동기 대비) 정도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지난 5년(20분기) 평균은 4.0%였다. 이런 성장 둔화 속에서 상위소득 가계의 소득증가율은 어떤 방식으로 계산하든 저소득 가계보다 컸다. 소득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닌 한 저소득 가계의 소득은 상대적으로 감소했거나 정체했을 것이다. 고용시장 역시 사정이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졌을 리 만무하다. 이런 거시경제의 제약을 생각해 보면 정부와 정부 지지자들의 통계 논란은 한가한 소리처럼 들린다.

이런 점에서 정부와 여당이 오히려 국민에게 해야 할 이야기는 우리 경제 조건이 구조적으로 어려움에 처했고 몇 가지 정책조합으로는 단기적으로 쉽게 극복하기 어렵다는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친화적인 수요측 경제학자들은 오늘날의 위기를 정부 정책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경기변동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임금인상으로 생산성 혁신이 가능하고, 정부가 재정을 좀 더 풀면 경기도 살아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얼마 전까지 수요 측 경제학자들은 지속적 잠재성장률 하락과 구조적 수요부족으로 장기불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혁진영에서 불평등과 관련해 많이 인용하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장기 저성장을 조건으로 일반 정책으로는 극복 불가능한 불평등 확대를 주장했다. 그런데 이런 이론들과 같은 맥락에 있는 한국의 경제학자들은 문재인 정부라면 이 모든 조건을 극복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소득주도 성장 같은 성장 낙관론이 아니라 저성장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 단기간에 극복 불가능한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

고성장에 익숙한 우리에게 저성장은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다. 나는 40년간 연평균 7% 경제성장 시대에 살았다. 10년마다 경제가 2배 성장했고,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 말이 비유가 아니라 현실인 시대에 살았다. 하지만 내 아이는 앞으로 80년간 연평균 1~2% 경제성장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한평생 강산이 한 번 바뀌는 것을 보면 다행이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강산이 그 강산인 사회를 살게 될 수도 있다. 참으로 인정하기 싫은 미래다.

경제 상태를 둘러싼 헛된 논란보다는 이 시대를 과연 노동자 민중이,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진지하게 토론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그 토론에는 자본주의 체제만이 대안인지도 의제가 돼야 할 것이다. 이윤을 목적으로 자본이 생산을 조직하는 자본주의에서는 적당한 답이 없는 것 같아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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