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6·13 전국동시지방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각 정당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겠지만 정작 국민 관심은 싸늘하다. ‘이슈·인물 없는 지방선거’라고 불릴 정도다. 남북정상회담·북미정상회담 등 남북관계 개선을 둘러싼 대형 이슈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높은 지지율로 인해 여당 압승이 예상되는 상황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인 필자 역시 노동안전보건 관련 정책 수립과 집행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선과 총선보다 지방선거에 관심이 덜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 10일 서울시가 ‘감정노동종사자 보호 가이드라인’을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수립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안내·상담·민원·돌봄서비스 등의 직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가이드라인이다. 휴게시설과 휴식시간을 보장해 악성민원·폭언 등으로 소진된 감정 회복을 지원하고, 민원응대 전화를 모두 녹음해 폭언·성희롱을 예방하며, 사건 발생시에는 증거자료로 활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시는 위법행위가 발생하면 4단계(경고→민원인 분리→휴식·심리상담→법적조치) 보호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올해 8월까지 실·국·본부 단위 세부계획을 세워 본격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근 감정노동종사자 정신건강에 대한 사업주 조치를 의무화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입법예고되는 등 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산업안전보건법 26조의2(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가 신설됐다. 고객응대 노동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올해 10월18일 시행된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2016년 ‘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 등에 관한 조례’ 제정에 이어 가이드라인을 수립·시행한 것은 상당히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조치로 판단된다. 특히 서울시가 제시한 11대 지침 중 ‘업무중지권’ 부분은 비록 ‘30분 동안 휴식’이라는 제한으로 한계가 있지만 대단히 고무적이다.

노동친화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것은 비단 중앙정부만의 몫이 아니고 지방정부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향상을 위해 대통령·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시장(지자체장)과 시·도의원(지방의회 의원)도 잘 뽑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자체 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 교육감선거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 몇 년 사이 직업계고 학생들이 현장실습 중 자살·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직업계고 학생들의 현장실습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직업계고 학생들의 현장실습을 개선하려면 기본적으로 정부(교육부) 차원의 정책 수립과 집행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시·도 교육청 차원에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부분, 혹은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전국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협의회를 비롯한 청소년 노동인권 관련 시민·사회단체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도 교육감 후보들에게 직업계고 현장실습에 대한 입장을 묻고, 제도를 바꾸자고 요구했다. 시민·사회단체의 핵심적인 요구는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 폐지 △대안적인 직업교육 계획 수립 △현장실습 프로그램 내실화 △특성화고 현장실습 운영에 관한 정보공개(알권리 보장) △현장실습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과 정책 반영 △취업률 중심 학교 평가와 취업률 공표 폐지 △직업계고 학생 학습권과 교사 평가권 보장 △학교 노동인권교육 실시 등이다.

모든 요구를 시·도 교육청 차원에서 수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런 요구를 지지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이를 교육부에 요청할 수는 있다. 일부 요구는 시·도 교육청 차원에서 직접 시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일부 지역 후보들은 요구 중 일부를 수용해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투표만으로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향상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투표를 통해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조금이라도 향상될 수 있다면, 우리의 소중한 한 표를 보다 신중히 행사해야 할 것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동네가 좀 더 노동자들이 살기 좋은 곳이 되기를 바란다면 이번 지방선거부터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누구에게 줄 것인지 한 번 더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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