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진짜 봄이 왔다”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이 끝내 승리를 거머쥔 순간이었다. 올해 3월10일 오전 11시21분 이정미 당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입에서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한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청석에서는 짧고 굵은 탄성이 나왔다. 헌법재판소 앞에 모인 시민들은 “우리가 현직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며 “탄핵은 시작이다. 박근혜를 구속하라”며 소리를 높였다.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후 92일, 박 전 대통령 취임 1천475일 만의 일이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현직 대통령의 국정농단으로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사상 최대 규모 집회가 이어졌다. 전국에서 쏟아진 시민 1천700만명(누적인원)은 “이게 나라냐”며 짱돌 대신 촛불을 들었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촛불집회에 참가한 대한민국 국민을 ‘2017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박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최후진술서에서 “경제부흥과 문화융성 등 국민과 약속한 사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마음으로 국정에 임해 왔다”며 “불법과 위헌적 통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해야 함에도 최서원(최순실)의 국정개입 의혹을 철저히 숨기고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의혹 제기 자체를 비난했다”며 “국회나 언론에 의한 권력 견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권력을 사유화한 박 전 대통령은 구속됐다. 그 곁에서 권력을 나누고 국민을 우롱한 최순실도 박 전 대통령과 함께 구속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938년 삼성그룹 창업 이래 총수 첫 구속’이라는 흑역사를 썼다. 법꾸라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세 번째 영장청구 끝에 구속됐다.

촛불시민은 정권을 교체했고 국정농단 세력은 줄줄이 구속됐다. 촛불시민이 외친 “진짜 봄은” 정말 왔을까. 애석하게도 아직 한국 사회 국정농단 그림자는 걷히지 않았다. 사회 곳곳에 적폐가 들러붙어 있고 권력은 여전히 있는 자들의 것이다. 최근 이재명 성남시장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어제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진정한 촛불혁명 완성의 순간까지 우리 멈추지 말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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