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회장님이 매장을 순회했다. 진열대 케이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즉각 전국 모든 매장에 케이크 준비 지시가 하달됐다. 느닷없이 제빵기사들의 출근시간이 1시간여 앞당겨졌다. 제빵기사가 소통카톡방을 통해 본사 관리자에게 이 지시로 점심을 못 먹을 수도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본사 관리자는 이 회사는 회장 소유라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대한민국 제빵업계 1위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파리바게뜨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례적으로 고용노동부가 상시·지속업무를 수행해 온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과 카페기사들 5천378명의 본사 직접고용을 시정지시한 것은 이유가 분명했다. 파리바게뜨가 파견법을 위반한 불법파견을 저질러 왔음은 삼척동자라도 알아볼 정도로 명백했다. 파리바게뜨가 소속된 법인인 파리크라상을 계열사로 거느린 SPC그룹 허영인 회장과 본사가 실질 사용주임이 차고 넘치는 물증을 통해 낱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외양상 도급으로 보이려 애쓴 경쟁계열사와 대비해서도 파리바게뜨는 노골적이었다. 화섬노조 파리바게뜨지회가 결성되면서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진짜 사장이 법적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려 불법적으로 남용해 온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가 적나라하게 폭로됐다.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가 특히 사회적으로 주목받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 해결 없이 한국 사회 정상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후 공공부문에서는 여러 제약조건 속에서도 간접고용을 포함한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진전돼 왔다. 결정적인 관건은 민간부문이다. 특히 지불능력이 충분한 주요 업종 대기업에서 양산돼 온 간접고용 불법 일자리를 어떻게 정상화하느냐가 핵심 선결과제로 대두됐다. 1위 제빵 브랜드인 파리바게뜨가 민간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시금석이 됐다.

둘째, 청년일자리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제빵기사들과 카페기사들은 20~30대 청춘들이다. 파리바게뜨가 첫 직장인 청년노동자들도 많다. 15년여 근속한 기사들도 있다. 더구나 3분의 2가 넘는 기사들이 여성들이다. 제빵기사와 카페기사 이미지를 집약하면 사회에 진입한 여성 청년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청년노동자들이 불법 일자리에서 불합리한 차별을 감내하며 인권침해에 시달려 온 것이다. 당연히 이직율도 높았다. 직접고용 시정지시가 내려지고 노조가 결성된 이후 이직률이 낮아졌다.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불안감도 여전하다.

파리바게뜨 본사는 합자회사를 직접고용 회피수단으로 내세워 강행하고 있다. 파리바게뜨 본사와 가맹점주·협력회사가 공동출자한 회사로 제빵기사와 카페기사들을 고용하겠다는 것이다. 불법파견업체이자 실체도 없이 본사 들러리에 불과한 협력업체까지 포함한 합자회사는 직접고용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 파리바게뜨 본사와 불법파견업체 관계자가 전국을 돌며 설명회를 진행 중이지만 오히려 더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을 뿐이다. 노동부의 직접고용 지시를 이행하면 오히려 불법파견이 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까지 한다고 하니 동의를 얻을 리 없다. 이런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온당한 시정지시를 내린 정부와 대립하고 불법파견에 따른 법적·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면서 파리바게뜨 본사가 얻을 건 무엇인가. 청년노동자들의 권익을 침해하고 착취한 불법그룹이란 오명 외에 아무 것도 없다. 파리바게뜨·파스쿠찌·던킨도너츠·배스킨라빈스·빚은·샤니 등 듣기만 해도 친숙한 유명브랜드들을 거느린 국내 수위 식품전문종합그룹이란 이미지에 먹칠하는 것밖에 안 된다. 의사결정권을 지닌 허영인 SPC 회장이 결단해야 한다. 행정소송으로 시간 벌기에만 혈안이 돼선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다.

삼립으로 잘 알려진 SPC그룹의 핵심가치는 정직·혁신·협업이다. 허영인 회장은 2012년 신년사에서 맛은 정직한 마음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되묻는다. SPC그룹의 주력 브랜드인 파리바게뜨 불법파견이 경영철학 핵심가치와 양립할 수 있는가. 불법 일자리를 시정하지 않은 채 정직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는가. 11월29일까지 판결 예정인 직접고용 시정지시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 결과와 상관없이 불법이 판명된 만큼 허영인 SPC그룹 회장과 파리바게뜨 본사 경영진이 결단할 때다. 이익이 있는 곳에 책임이 따른다. 노동법의 대원칙이다. SPC그룹과 파리바게뜨가 불법파견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노사교섭과 직접고용 시행을 통해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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