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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자리를 향한 우리의 다짐

좋은 일자리 도시 국제포럼이 지난 6일 성황리에 끝났다. 국제포럼을 주최한 서울시와 10개 도시정부, 노동계와 노동전문가들은 좋은 일자리 도시 네트워크 구성이 담긴 ‘서울선언’을 채택했다.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이 방한한 이번 행사는 노사 단체는 물론 정부·국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가이 라이더 사무총장과의 면담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의지를 다시 한 번 보여 줬다.

국제포럼이 주는 여운이 큰 가운데 행사 의미가 뚜렷하게 부각하지 않아 아쉽다. 공교롭게도 북한 핵실험으로 남·북과 미·북의 긴장관계가 높아진 시점에 국제포럼이 열린 탓이다. 주요 언론과 국민은 문재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결과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각에선 국제포럼 개최 시점이 우리나라 최근 정세와 거리가 있다고 평가한다. 때문에 행사 의미가 대중적으로 각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해는 풀고, 왜곡은 막아야 한다. 비록 국제포럼은 끝났지만 그 발자취를 더듬고자 한다. 그래야만 국제포럼의 의미를 제대로 건져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좋은 일자리(Decent Work)라는 주제로 도시정부가 국제포럼을 개최하면 어떨까. 박근혜 정부가 노동법 개정을 개혁이라고 포장하고 밀어붙였던 2016년의 일이었다. 그해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터라 박근혜 정부는 노동법 개정을 선거의제로 채택했다. 선거에서 노동이 이슈로 부각했지만 노동자들은 달갑지 않았다. 반면 서울시는 ‘좋은 일자리’라는 개념을 차용해 여러 노동정책을 체계화하고, 평가하는 지표를 개발하려 했다. 좋은 일자리는 1999년 ILO 총회에서 채택한 선언에 담겼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와 정규직ㆍ비정규직으로 고착된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사회통합을 훼손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노동존중 특별시를 표방한 서울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생활임금제도 도입,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등 굵직한 노동정책을 사회적 대화로 추진했다. 이러한 정책은 좋은 일자리 의미에 포함됐다. <매일노동뉴스>와 노동전문가와 학자들이 좋은 일자리 지표개발에 함께 뛰어들었다. 1년여의 작업 끝에 연구 결실을 맺었다. 그러던 차에 서울시가 지향하는 좋은 일자리를 알리고, 다른 나라의 경험을 공유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한편에선 노동기본권에 해당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우리나라가 비준하는 흐름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ILO 핵심협약 8개 가운데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98호), 강제노동 금지 협약(29호ㆍ105호) 4개를 비준하지 않았다.

좋은 일자리는 일터에서의 기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과 좋은 일자리라는 두 가지 제안은 함께 어우러져 국제포럼 골격을 형성했다. 서울시 일자리위원회는 이런 제안을 숙고했고, 마침내 좋은 일자리 도시 국제포럼의 닻이 올려졌다. 그사이 정부가 주도한 노동법 개정은 좌절됐고, 광장에서 타오른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노동존중 정책을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국제포럼은 새로운 변화를 열망하는 국내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되레 그 열망을 받아안으려는 시도다.

북핵 위기가 고조됐다고 하더라도 광장에서 타오른 촛불혁명이 사그라져선 안 된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시도를 중단해선 안 된다. 촛불혁명이 지향하는 나라다운 나라는 바로 노동을 존중하는 나라다.

국제포럼이 채택한 서울선언은 노동을 존중하는 도시모델,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도시정부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소하고 노동인권을 보장하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는 다짐이다. 이것이 미래의 지속가능한 도시노동 모델이 돼야 한다는 선언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새로운 나라로 가는 전제조건이다. 87년 이후 전개된 노동법 개정과는 질적으로 다른 국면에 들어섰다는 얘기다. 노·사·정은 노동법 개정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더 이상 회피하려 하거나 미뤄선 안 된다. 좋은 일자리 도시 국제포럼이 제기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나라를 여러 번 다녀간 가이 라이더 사무총장이 호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후 불안정 노동이 확산한 가운데 세계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소멸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기술발전의 총아인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례를 받은 우리나라에선 4차 산업혁명 추격자로 자임하는 열풍이 불고 있다. 기술발전이 빠르게 진행된다고 한들 양극화라는 괴물을 회피하려 한다면 모래성을 쌓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ILO는 99년 좋은 일자리 선언을 한 데 이어 2019년 100주년을 맞이해 ‘일의 미래’를 제시하려는 것은 아닐까. 국제포럼을 주관한 <매일노동뉴스>는 앞으로도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독자들에게 약속한다.

박성국 논설위원  park21@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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