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가이 라이더(61·사진)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은 6일 “ILO 핵심협약은 노동기본권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인권에 관한 협약”이라며 한국 정부에 협약 비준을 재차 촉구했다.

가이 라이더 총장은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진행된 <매일노동뉴스>를 포함한 7개 언론사와의 공동 인터뷰에서 “핵심협약 비준은 법 개정 같은 기술적 (어려움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 문제라고 본다”며 이같이 말했다.

우리나라는 ILO 핵심협약 8개 중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98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29호) △강제노동 폐지에 관한 협약(105호)을 비준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ILO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하겠다”고 공약했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있다.

라이더 총장은 “플랫폼 경제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발전하면서 고용형태가 다변화하고 비정규 노동자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노조 조직률 하락 문제와 관련해서는 “세계적인 추세고 정부의 반노동 정책도 영향을 미친다”면서도 “노조가 비정규직이나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지, 조합원 외에 다른 노동자를 대변하고 있는지도 스스로 돌아봐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 ILO 사무총장 당선한 이후 첫 방한이다. 방문 목적은 무엇인가.

“ILO 사무총장이 된 이후 5년 동안 한국에 올 기회를 계속 모색했다. 마침 한국에서 노동현안과 관련한 진전된 논의가 있고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오게 됐다. ILO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많은 이슈가 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노동기본권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대통령과 만났고 대화는 매우 건설적이었다. 고용·일자리·비정규직·노동기본권을 비롯한 여러 노동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문 대통령이 ILO 핵심협약 비준 의지를 보여 줬다. ILO는 한국의 비준을 위해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 협약 비준 의지 보여 줬다"

- 한국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ILO 핵심협약은 노동기본권에 관한 협약이자 인권에 관한 협약이다. 기본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권리다. 한국뿐만 아니라 모든 회원국에 비준을 권하고 있다. 비준하는 것이 사회정의로 향하는 길이다. 한국의 여러 노동법이나 관행들이 ILO 협약과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법 개정 노력도 필요하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단결권·단체교섭을 제약하고 있다. 노조활동으로 인해 노조원들이 감옥에 갇히는 일이 아직도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ILO는 이런 문제들을 10년 동안 살펴 왔다. 그래서 ILO가 협약 비준과 관련한 도움을 한국에 줄 수 있다고 본다. 협약 비준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의지 문제다.”

- 한국 노조 가입률이 10% 안팎에 불과하다. 노조 가입률을 어떻게 높일 수 있나.

“안타깝게도 1980년 이래 전 세계적으로 노조 가입자가 줄고 있다. 영국 같은 경우도 한때 조합원이 1천200만명에 달했지만 600만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경제구조가 변화하면서 전통적인 분야가 아닌 서비스업종이나 신기술 분야에서는 노조가 잘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노조에 우호적이지 않은 정부 정책이 노조 가입률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노조들의 책임도 있다. 기존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어떤 상황에서는 노동자들이 노조를 비판한다. 노조들은 매번 외부에서 노조 가입률 저하 원인을 찾지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노조가 노동자들에게 더 다가가야 한다.”

- 한국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있다. 양대 노총을 어떻게 평가하나.

“1996년에 한국에 처음 왔다. 양대 노총과는 20년 동안 교류·협력했다. 양대 노총은 한국 사회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하지만 노조 조직률은 10%에 불과하다. 양대 노총이 전체 노동자에 대한 책임감을 더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 역시 노조 일을 했고 우선 조합원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조직되지 않은 광범위한 노동자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특히 한국 노동시장은 분절돼 있다. 또 노조가 일부 산업에만 집중돼 있다. 비정규직이나 청년 노동자는 노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노조가 이런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사회적 대화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해야"

-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비전형 노동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이슈다.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임시직·시간제·파견직·하도급이 모두 기존 정규형태 고용이 아닌 비전형 노동이다. 최근에는 플랫폼 노동까지 나타나고 있다. 우버나 에어비앤비에는 고용주도 직원도 없다. 비전형 노동을 기술 발전의 부산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두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하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공공부문에서 정규직화를 시도하고 있다. 분절된 노동형태는 좋지 않기에 해법 중 하나일 수 있다. 또 하나는 다양한 고용형태를 수용하는 것이다. 다양한 고용형태가 생기는 것이 반드시 나쁜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이 경우에는 모든 노동자가 받는 혜택, 사회적 보호 기준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핵심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정규직의 50%를 일한다고 하더라도 50%의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더 적은 임금을 받는다. 그 외에도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불안정한 노동 여건에 놓여 있는 등 많은 불이익이 있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플랫폼 노동이나 공유경제가 더 확산한다면 비전형 노동은 더욱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ILO도 '일의 미래 100주년 이니셔티브'에서 이러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 한국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우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ILO 역시 소득주도 성장을 주창했다. 우리는 지난 수십년간 임금이 오르지 않는 현상을 목도했다. 그리고 노동소득분배율도 지난 30년간 감소했다. 이것은 노동자의 노동조건뿐만 아니라 경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양극화라는 사회적 문제도 일으킨다. ILO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도 심각해지는 불평등이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했다. 우리는 소득주도 성장이 올바른 접근법이라고 판단한다. 공공부문부터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일자리를 민간부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반대로 지난 세 번의 산업혁명이 인간에게 더 많은 일자리와 번영을 가져왔다는 분석도 있다. 일자리 문제는 기술발전에 달려 있다고 보지 않는다. 기술발전과 일자리에 대해 어떤 정책을 채택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어떻게 기술을 활용하고 이롭게 할 것인가. 그런 측면에서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

- 최저임금 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저임금 정책은 빈곤완화에 효과적이다. ILO는 최저임금 제도 도입을 각국에 권유해 왔다. 최근에는 독일이 최저임금을 도입했다. 최저임금은 경제의 생산능력을 한편에서 고려하면서 사람들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한국에서 최근 최저임금을 인상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해결책을 찾되,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경제적 능력과 빈곤 문제를 함께 고려해 정부가 책임 있게 결정해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