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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을 기억하며 사회를 바꾸자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며 우리는 생명존엄 사회를 만들길 원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바뀌고 있을까. 3월31일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은 '수색 재개'를 간절히 요구하며 길거리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5월1일 삼성중공업에서는 크레인에 부딪혀 6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지만, 책임지는 이는 없다. 과거의 재난으로부터 배우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위험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 따르면 1964년부터 2013년까지 10인 이상 사망한 대형재난이 276건이었다고 한다. 그중 일곱 개의 재난을 추적한 책 <재난을 묻다>는 과거 재난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질문한다.

70년 남영호 침몰사고는 337명이 사망한 최악의 해난사고다. 정부는 SOS 타전을 무시했고 10시간 넘게 구조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서슬 퍼런 군사정권 아래에서 유가족들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권위적인 정부만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것이 아니다. 2014년 장성요양병원 유가족들도, 2011년 인하대 봉사단 유가족들도, 99년 씨랜드 화재사고 유가족들도 진실규명을 위해 싸우는 순간 "돈 때문에 그런다"는 모욕을 당해야 했다.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은 "정치적 마타도어가 있다" "대구의 불행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정부는 언론을 동원해 유가족을 모욕하고 고립시켰다. 이 책에는 그 유가족의 고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진실규명은 참으로 어렵다. 특히 정부가 그 재난의 원인이나 구조실패에 책임이 있을 때 정부는 진실규명을 방해한다. 경기도에서 씨랜드 참사 백서를 발간했지만 유가족들은 별도의 백서를 발간했다. 이윤을 추구하는 소유주와 부패한 관료들이 만나 비극을 만들었던 이 참사에서 유가족들은 정부가 밝힌 것과는 다른 진실을 보여 주고자 했다. 춘천으로 봉사활동을 갔던 인하대 봉사단 유가족들도 춘천시의 방해와 해태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진상조사를 통해 이 참사가 필연적인 인재였음을 밝혀냈다. 이 책에는 표면적인 원인의 나열을 수용하지 않고, 참사의 원인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진 이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사람이 돈벌이 대상이 되고, 생명과 안전이 비용절감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참사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관리·감독 소홀도 문제다. 2013년 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림산업 폭발사고는 정부의 책임회피와 직무유기, 관리·감독 부재가 얼마나 큰 참사로 이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병원은 크고 넓지만 정작 의료인력이 부족했던 장성요양병원도 마찬가지다. 피난장비도 없고 비상계단도 막아 놓았고 스티로폼이 함유된 샌드위치 패널로 시공된 벽이 위험을 가중시키지만 거짓 안전점검표와 병원 관계자 말을 듣고 '양호' 표시를 하는 안전점검은 일상이었다. 그러나 책임자들은 늘 빠져나가고, 관리·감독을 담당한 이들도 처벌받지 않는다. 책임자가 처벌받지 않는 현실에 피해자들은 또다시 좌절한다.

오히려 이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만 고통을 받고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한다. 2013년 7월 5명이 사망한 태안 해병대캠프에서 살아 돌아온 이는 '왜 위험을 알면서도 시키는 대로 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인내와 극기로 포장했지만 실은 사고 중지와 굴종을 내면화하는 해병대캠프 훈련에서 그들은 침묵했고, 친구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고통에 시달렸다. '무력감'과 '복종'이 일상화하면 위기의 순간에 피해자들은 '가만히 있게' 되고, 권력을 가진 이들은 그 위험에서 빠져나간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은 다시 '가만히 있기'를 강요받는다. 트라우마는 제대로 치유되지 않으며 세상에 대한 분노만 쌓인다.

이 책 <재난을 묻다>에는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 목소리는 때로는 고통스럽고 분노를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용기'가 담겨 있다. 재난 피해자들은 단지 피해자로 머물지 않고 진실을 규명하고 다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써 왔다.

많은 시민이 이들과 함께해 왔다. 정부와 기업들이 재난을 우연하고 특별한 사건으로 만들어 '우리'와 분리시키고자 했으나 우리는 재난이 우리의 문제임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기록을 다시 읽어야 한다. 현재도 싸우고 있는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 그리고 4·16가족협의회와 함께 재난을 만들어 낸 구조를 바꾸기 위해 애도하고 기억하며 또 싸울 것이다. 생명안전 사회를 원하는 우리 모두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김혜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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