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7안벽에서 800톤급 골리앗크레인과 32톤급 타워크레인이 충돌해 타워 크레인 붐대(지지대)가 무너졌다. 삼성중공업일반노조

“거제를 제 기억에서 지우고 싶습니다.”

6명이 목숨을 잃고 25명이 다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타워크레인 충돌사고 현장에 박철희(45)씨가 있었다. 동생의 권유로 삼성중공업에서 일한 박씨는 지난 1일도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오후 2시50분,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그랬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 위 크레인이 방금 전 박씨와 함께 담배를 태우던 동생을 덮쳤다.

“사고 현장이 너무 참혹했어요. 크레인 아래 깔린 사람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죠. 사고 직후 험악한 사체가 환영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동생이 저한테 ‘오라’고 부르는 소리도 들리고…. 수면제를 처방받아야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크레인이 있으면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길 수 없어요. 크레인이 나를 덮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어요.”

박씨는 사고 후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동생의 사망과 관련해 회사와 합의가 끝난 직후 박씨는 지난 12일 가족이 있는 서울로 올라왔다. 25일 산업재해신청을 위해 다시 거제를 찾은 그는 “모든 것을 지우고 싶은데 산재신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제를 갔다 왔다”며 “다시는 삼성중공업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숨지었다.

◇크레인사고 후 화재·추락사고 이어져=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7안벽에서 800톤급 골리앗크레인과 32톤급 타워크레인이 충돌했다. 타워크레인 붐대(지지대)가 무너지면서 해양플랜트 제작 현장을 덮쳤다. 경찰은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하고 26일 삼성중공업 박대영 대표이사와 김효섭 거제조선소장을 소환해 조사했다. 김 소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은 크레인 안전관리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채 신호수와 운전자 간 신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을 사고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에 앞서 15일 삼성중공업은 안전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사고 현장을 제외한 모든 작업장에서 작업을 재개했다. 삼성중공업은 안전사고 방지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고 있다.

사고수습과 조사가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느낄 찰나 삼성중공업에서 또 다른 사고 소식이 날아들었다. 삼성중공업이 작업을 재개한 지 이틀 만인 17일 화재사고가, 18일 도장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가 3미터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삼성중공업의 안전 불감증과 고용노동부의 허술한 관리·감독이 도마에 올랐다.

22일에는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또다시 크레인사고 소식이 전해졌다. 타워크레인이 부러져 아파트 11층 높이에서 추락했다. 하청노동자 3명이 숨지고 2명이 크게 다쳤다.

연이은 사고로 크레인 작업환경의 구조적인 문제와 안전규칙 미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골리앗크레인 작업은 정규직 노동자가, 타워크레인 작업은 하청노동자가 했다. 원·하청 작업 노동자 간 원활한 소통 역시 어려웠을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크레인이 작동할 때는 작업반경 안에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고 현장에는 간이휴게실이 설치돼 있었다. 노동자들이 작업반경 범위 안에 있었는데도 크레인 작업은 진행됐다.

사고가 나기 하루 전까지 사고 해양플랜트 모듈에서 일한 하청노동자 A씨는 “크레인은 쉬는 시간에도 움직였다”며 “평소에도 인명사고가 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노동부, 크레인사고 대응계획 발표=최근 5년간 타워크레인 관련 중대재해로 22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쳤다. 2012년 0명이던 사망자는 2013년 5명, 2014년 6명, 2015년 1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사망자는 5월 현재 9명이다.

노동부는 최근 잇따르는 크레인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응계획을 발표했다. 산업현장에 크레인 작업에 대한 위험경보를 발령하고, 크레인 사용 건설현장을 기획·감독한다. 크레인 임대사업주와 관련 노동자에게는 특별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조선업체 87곳 1천14대 크레인을 대상으로 다음달 9일까지 확인점검도 한다.

노동부 사고 대응계획을 놓고 크레인의 기계적 결함이나 노후화에 국한돼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크레인 기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박종국 시민안전감시센터 전문위원은 “삼성중공업 사고는 기계적 결함이 아닌 기술적 문제”라며 “두 크레인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신호수가 이를 운전수에게 알려주고 작업 상황을 컨트롤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현장에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단계 하청구조에서 총괄적인 지휘체계가 무너졌다”며 “크레인 충돌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전문신호수자격제도를 도입하고, 안전 관리자 입회하에 신호수들이 제 역할을 하도록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전문위원은 “충격방지장치는 크레인 5미터 가까이 물체가 감지되면 전원이 차단된다”며 “업체들은 크레인 작업반경이 좁아지고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장치를 달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물량 도급 관행도 사고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여러 하청업체가 뒤섞여 자신들의 작업 물량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작업할 때 위험요인에 대한 지각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노동자들은 “6월로 정해진 납기 일정을 맞추기 위해 삼성중공업이 작업을 서둘렀다”며 “혼재작업도 진행돼 작업현장이 위험했다”고 증언했다. A씨는 “공정을 서두르다 보니 혼재작업은 늘 있어 왔다”며 “보온·용접·그라인더·도장·전기·시운전 등 해양플랜트 관련 거의 모든 공정이 동시에 진행됐다”고 말했다.

◇진짜 원인은 다단계 하청구조=노동계는 사고가 잦은 핵심 원인에 다단계 하청구조가 있다고 주장한다. 다단계 하청구조에서는 안전관리나 작업 총괄지휘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다. 따라서 크레인 기사 과실로 몰고 가는 조사를 진행할 게 아니라 원·하청 안전관리와 이에 수반하는 구조적 문제를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자료에 따르면 기능인력 중 하청노동자 비중은 79.1%나 된다. 해양플랜트 분야는 무려 90.8%가 하청노동자다.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피해자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2015년 기준 삼성중공업 사내협력사는 135개 업체로 2만2천800명의 하청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사고 피해자가 모두 하청노동자라는 이면에는 다단계 하청구조가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김경습 삼성중공업일반노조 위원장은 “아무리 공정이 바빠도 모든 산재사고에 대한 책임만 확실히 물을 수 있다면 원청은 안전관리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다단계 하청구조를 이유로 원청의 책임회피가 가능하다 보니 제대로 된 사고 예방이나 수습·재발방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진짜 피의자를 처벌하라”=노동·시민·사회단체는 삼성중공업 사고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대책위를 꾸리고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공대위는 크레인사고의 근본 원인을 밝히려면 삼성중공업의 하도급·재하도급 실태, 안전관리 예산과 인력 및 투자현황, 하청업체에 대한 안전보건관리 현황, 삼성중공업의 산업안전보건법 준수 여부와 산재은폐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대위는 “위험의 외주화가 근본적인 문제인데도 사고 원인을 크레인 기사 등 하위 직급 노동자 과실로만 몰아가서는 안 된다”며 “근본적인 원인 조사와 처벌 및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위해 삼성중공업 최고 책임자인 박대영 사장을 구속해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원청이 운영하는 골리앗크레인이 사고 원인 중 하나인 데다 신호수도 원청근로자였다”며 “원청근로자가 다치지는 않았지만 삼성중공업을 상대로 자사 근로자 안전 조치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원청은 같은 작업장 안에서 일하는 근로자에 대해 안전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를 위반했다”며 “원청책임 강화를 위해 제도적으로 개선할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김춘택 금속노조 통영거제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공대위는 사고 그 자체만이 아니라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쳐야 했는지, 그들은 왜 모두 하청노동자인지’ 등 조선소 구조적 문제를 포함해 다각도에서 현장을 점검하는 자체 진상조사를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공대위는 노동부에 부상을 입은 노동자들의 산재를 인정하고 박철희씨처럼 외상후 스트레스를 겪는 노동자들에게는 장기적인 상담치료를 수행하라고 요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운동 중이던 이달 3일 거제 의료법인거붕 백병원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하며 “삼성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해 제대로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박씨는 “삼성중공업은 제대로 된 사과나 사죄의 뜻을 밝히지 않았다”며 “원청인 삼성중공업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는 사고 뒤 거제를 떠났다가 돌아왔다. A씨는 “작업 환경이 열악하고 위험한 데다 이익에 쫓겨 노동자들을 천대하는 조선소로는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거제도를 떠난 지 3주 만에 다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로 돌아왔다. B씨는 “다른 지역에서 일거리를 찾았지만 여의치 않았다”며 “생계 때문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철희씨는 “일정을 맞춘다는 이유로 최하층 노동자를 쥐어짜는 시스템에서는 사고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동생은 비록 떠났지만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의 바람대로 다시 돌아온 A씨는 안전한 조선소에서 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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