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지난달 19일 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바로 다음날부터 변호사·법학교수 등 법률가들이 법원을 규탄하며 이재용 즉각 구속을 촉구하는 법원 앞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법원의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70여명의 법률가들이 농성 참여를 선언했다. 농성 5일 만인 지난달 25일에는 농성에 참여하는 법률가들이 228명으로 불어났다. 농성장에는 지지방문을 오는 시민·예비 법률가들로 항상 북적댄다.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연대와 지지의 물결로 법률가 농성단은 설 연휴를 넘겨 농성을 계속하기로 결의했다.

무엇이 사상 초유의 법률가 농성을 만들어 내고 또 확대시키고 있는가. 농성장에 있으면서 새삼 느낀 것이 특권층 앞에선 약하고, 서민 앞에선 폭력적일 정도로 강한 사법부에 진저리 치는 경험을 가진 법률가들의 공분 같은 것이었다. 재벌 기업인은 어떠한 비리와 탈법을 저질러도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법원과 검찰의 관대한 처분을 받고, 노동자와 서민들은 생존의 벼랑 끝에서 어쩔 수 없이 법령을 어겨도 추상같은 단죄를 받는다. 이런 사법부를 대하면서 “법 앞에 평등”이 공문구에 불과하다는 경험을 가진 이들의 울분과 무기력감이 이번 농성을 확대시키고 있음을 본다.

서초동 법원 앞 법률가 농성장 옆에는 현대·기아자동차 비정규 노동자들의 농성장도 있다. 지난해 12월23일부터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요구는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파견과 폭력을 자행하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법대로 처벌하라는 것이다. 2004년 고용노동부가 현대차의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임을 확인했고, 2010년에는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다. 2014년에는 서울중앙지법이 집단소송을 제기한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차와 직접고용관계에 있다고 판결했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르면 불법파견으로 노동자를 사용한 사용사업주는 3년 이하 징역,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10년 넘게 불법파견을 계속 사용하고 있는 현대차 사용자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도리어 2015년 12월 울산지검은 현대차 정몽구를 비롯한 사용자를 상대로 “증거불충분으로 혐의 없음”이라며 파견법 위반 혐의를 불기소처분했다.

반면 2010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라며 파업을 한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불법파업’이라며 천문학적 금액의 손해배상 결정이 내려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부산고등법원은 2010년 파업 당시 쟁의를 주도한 비정규직·정규직 조합원 5명에게 9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2014년 1심 판결 당시 22명이었던 대상자 중 현대차 사용자의 회유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취하하거나 선별적 정규직화 채용에 응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현대차가 소송을 취하한 탓에 끝까지 지회 방침을 고수한 5명이 90억원을 물어내야 할 지경에 몰린 것이다.

명백한 불법을 저지르고도 구속은커녕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재벌·기업인과 헌법과 법률에 보장돼 있는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해고·구속, 그것도 모자라 평생을 일해도 갚지 못할 손해배상 책임을 떠안게 된 노동자. 기업인의 재산권과 경영상 자유는 무제한으로 보장하면서, 안정된 일자리에 대한 권리와 노동기본권 보장의 가치는 중요하게 보지 않는 법원 앞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그들과 함께하는 법률가들이 지금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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