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민중총궐기를 주최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받았다. 석방을 요구했던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가 반발하는 가운데 "박근혜 퇴진"을 요구한 시위에 대한 사법부의 차가운 시선이 재확인됐다는 냉소가 나온다.

경찰 ‘폭력 유발’ 잘못 빠지고
외려 시위대 폭력 책임 덮어씌워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부장판사 이상주)는 13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한상균 위원장에게 징역 3년과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1심 판결은 징역 5년에 벌금 50만원이었다. 형량이 2년 줄었지만 수감생활은 계속하게 됐다.

재판부는 일반교통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등 검찰이 주장한 혐의사실 대부분을 인정했다. 다만 지난해 5월1일 125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아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동자대회에서 특수공용물건을 손상시킨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당시 민주노총은 서울광장에서 노동자대회를 한 뒤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다 경찰과 마찰을 빚었다.

한 위원장 변호인은 항소심 재판에서 경찰이 민중총궐기 집회를 금지하고 차벽을 설치한 행위가 위법한 만큼 공무집행방해죄나 집시법 위반 혐의가 성립할 수 없다고 맞섰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은 평화적으로 집회·시위를 진행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경찰과의 충돌을 직·간접적으로 선동하고 사전에 경찰 차벽을 뚫는데 사용할 밧줄과 사다리를 준비하기까지 했다"며 "피고인의 행위로 피해를 입은 경찰관 숫자나 경찰차 파손 정도가 상당하고 극심한 교통혼란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집회 신고에 대한 경찰의 전체적인 대응이 당시로서는 위법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현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다소 과도했던 면이 있는 게 사실이고,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일부 조치가 시위대를 자극했던 측면도 있어 보인다"며 "평화적 집회·시위 문화가 정착돼 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피고인을 장기간 실형으로 처벌하는 게 평화적 집회·시위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 보인다"고 판시했다. 종로구청 사거리 일대는 지난해 민중총궐기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곳이다.

배태선 전 조직실장도 실형 유지

배태선 전 민주노총 조직쟁의실장도 또다시 실형을 받았다. 한 위원장 재판에 이어 열린 배 전 실장 항소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1심 징역 3년에서 감형한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배 전 실장은 지난해 민중총궐기에서 "청와대로 진격하자"는 등의 발언으로 집회 참가자들에게 폭력행위를 유도한 혐의로 올해 2월 구속기소됐다.

한 위원장과 배 전 실장 재판을 방청하던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재판부의 실형 선고에 분통을 터트렸다. 공판에 앞서 민주노총 조합원 50여명은 이날 오전 서울고법 앞에서 한 위원장 석방과 박근혜 구속을 요구하는 선전전을 했다. 조합원들과 시민단체 관계자 100여명이 몰려 방청석이 부족할 정도였다. 이들은 한 위원장이 재판장에 들어서자 박수를 치며 "힘내시라" 혹은 "반드시 승리한다"고 외쳤다.

실형 선고 직후 민주노총은 서울고법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즉각 퇴진과 부역자들을 청산하라는 성난 민심의 목소리를 재판부는 듣지 못하는가"라며 "감형은 면피이며, 촛불민심이 아니라 권력의 눈치를 본 터무니없는 유죄판결이자 중형선고"라고 비난했다. 민주노총은 곧바로 상고하기로 했다.

한 위원장은 민주노총 관계자를 통해 "지금 우리는 촛불을 들었고, 시민들과 함께 부패한 권력, 기득권 세력과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라며 "이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동지들이 좀 더 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당부의 말을 전달했다. 그는 "나의 신변을 걱정할 것도 신경 쓸 것도 없다"며 분통해하는 조합원들을 달랬다.

노동자들 대법원에 석방 판결 촉구

노동계와 야당·시민단체는 재판부를 규탄하며 대법원에 무죄 판결을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내고 "백남기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경찰과 관계자들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오히려 그 죄를 한상균 위원장에게 뒤집어씌운 재판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정경유착의 산물인 노동개악을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개최한 민중총궐기에 대해 사법부가 노동자에게만 가혹한 잣대를 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1년 먼저 촛불을 든 한 위원장에게 사법부가 중형을 선고했다"며 "노동자에게만 엄격하고 사용자와 재벌에게는 관대한 사법부가 정의를 수호하는 곳이 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지난해 민중총궐기는 어떠한 여론에도 귀를 닫았던 박근혜 정권의 독선적인 국가운영과 이를 위해 남발됐던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한 노동자와 시민의 정당한 행동이었다"며 "이를 맨 앞에서 주장했다는 이유로 3년이라는 중형을 받아야 하는지 사법부에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달라진 것들이 분명히 있지만 노동자를 대하는 법원의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며 "박근혜 탄핵을 결정하는 헌법재판소라고 다르겠느냐"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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